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영어 회화를 열심히 배우던 시절, 내가 한국인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꿈을 밤마다 꾸었다. 영어로 계속 이야기를 해서 누구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 꿈에서 경찰 앞에서 증명해야 할 때도 있었고, 다른 한국인과 대화할 일도 있었다. 현실에서도 외국을 여행하거나, 심지어 우리나라에 있을 때도 가끔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외국인과 함께 대화하고 싶을 때가 있다. 외국 여행 때는 현지인이 되어 그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을 만날 때는 나도 그들처럼 여행자라는 뭔가 친숙함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다른 나라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 누구도 내가 현지인인지, 여행자인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제 오후는 코로나 격리가 끝나는 시간이다. 그동안 비어있던 딸 방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그 방에 칩거하는 동안, 딸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다 오면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자는 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그 방은 정말 끔찍하게 더웠다. 에어컨 대신 밤새 선풍기를 틀고 자고 아침이면 얼굴이 두부처럼 퉁퉁 부었다. 저녁 무렵, 전철역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거쳐 새로 만들었다는 근린공원을 둘러보았다. 그새 가을이 오고 있었다. 나뭇잎은 노랗게 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숲에서는 마른 잎 냄새가 났다. 자연은 그대로 8월 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주의 시간표대로 지나가고 있었고, 자연은 내가 누구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 재직할 때, 아주 고약한 교장을 만나면 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 그래봤자 퇴직하면 뒷방 늙은이야. ”
나도 뒷방 늙은이로 어언 3년이 되었다. 재직시절엔 어딜 가든 내 신분을 숨겼다. 미용실에서도, 백화점에서 옷을 사면서도, 하다못해 이웃에게까지 철저히 숨겼다. ‘선생’이라는 직업이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심어줄 거라는 노파심에서다.
5년 전 남프랑스 여행을 패키지로 갔을 때였다. 내 환갑을 맞아 비슷한 나이 또래인 친구 세 명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마산에서 왔다는 두 여인네는 나중에야 우리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네가 가장 연장자라며 가는 곳마다 늙은 여행자의 코스프레를 했다. 우리는 각자의 ‘페르소나’로 모습을 바꾸며 11일간을 여행했다. 저녁 식사 때마다 팀이 돌아가며 와인을 샀다. 여행자들끼리 대화가 이루어지며 그들의 직업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전까진 모두 여행자 즉 ‘nobody’에서 ‘somebody’로 바뀌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러 간 여행인데, 갑자기 나를 확인하게 되었다. 나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나의 허영심이다. 무언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게 남아 있던 것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의사’로서, ‘사업가’로서, ‘원장’으로서, ‘교장’으로서 허영과 자만으로 자신을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nobody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천팔백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인생은 나그넷길, 여행길이다. 오늘 나는 현명한 여행자가 되기 위해 아무것도 아닌 자로 자신을 낮추어야겠다. 그런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