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메보시를 만들고 선물하며 느낀 다양한 감정들
우메보시는 일본 전통의 매실을 이용한 저장 음식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이 매실반찬은 우리나라 김치만큼 흔하게 일본인들의 밥상에 올라온다고 한다. 3년 이상 저장된 이 음식은 약으로 쓰일 정도로 몸에 좋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어쩐지 밥상에 놓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진한 분홍빛과 매만진 듯 동그란 모습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렇게 동그란 모양의 부드럽고 촉촉한 우메보시도 있고, 쪼글쪼글하고 아삭한 우메보시도 있다고 한다. 이 반찬은 대게 밥상에 단 한 두 알만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한국인 기준에서는 극도로 짜고 시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강렬한 맛에 너무나도 놀라 우메보시의 진면목을 알기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몇 번 먹다 보면 단조롭지만 깔끔하고 감칠맛 있는 그 맛에 빠져들고야 만다.
나는 친구 ‘유펑’과 만나는 날을 일주일 전부터 기다려왔다. 그녀와 사적으로 처음 만나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였는데, 그날 그녀는 나에게 다양한 식재료들을 선물로 주었다. (그중 그녀가 준 궁극의 ‘대저 토마토’로 인해 그날 이후 나의 토마토 맛의 기준치를 몇 배나 높여버렸다.) 유펑이 키우거나 유펑이 직접 만든 것들로 이뤄진 선물들에 비해 내가 그날 그녀에게 준 것은 유기농 밀가루로 만들어진 시판되는 비건 빵 몇 가지가 다였다. 선물의 종류와 그 사람과의 만남의 중대함을 빗대어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스스로도 느꼈지만, 나는 그날 이후 그녀가 갑작스레 생각날 때면 궁극의 대저 토마토도 함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번 만남을 앞두고 나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특별한 선물을 해야만 한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빵 따위를 줘선 안된다.'라고 생각했다. 유펑은 자신의 텃밭의 흙과 햇빛, 그리고 그녀의 노력의 결실이 담긴 고구마순, 감자, 오이를 비롯한 다양한 텃밭 식재료를 나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텃밭에서 고구마순을 캐고 선물할 잘 익은 오이를 고를 그녀를 생각하니 그녀가 서있을 눈부신 초록의 텃밭이 그려졌다. 눈부시고 쾌활한 그녀이다.
나는 지난 두 달간 내 혼신의 노력이 담긴 ‘우메보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우메보시는 평범한 우메보시가 아니었다.
약 두 달 전 나는 유기농 황매실을 구해 다치지 않도록 살살 씻어낸 후 이쑤시개로 꼭지를 일일이 땄다. 물기 있는 매실을 하루간 말린 후 이 날을 위해 한 달 전부터 구입한 코셔 소금을 꺼내 10% 정도로 염장 처리를 했다. 염장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매실에 골마지 (윗부분에 하얀 막)가 낀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실들이 소금에 균일하게 묻을 수 있도록 매일 굴려주었다. 10일쯤 지나면 소금에 의해 매실에서 수분이 나오는데, 이를 매초액이라고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매초액에 매실의 일부만 잠길정도로 조금밖에 없어 수시로 매실을 매초액에 균일하게 담기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시나 골마지가 끼거나 거품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맛을 해칠 수 있다.게다가 이쯤 되면 단단했던 매실이 아기 엉덩이처럼 보드라워지기에 나는 매실들이 터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며 매일매일 매초액이 고르게 묻도록 굴려주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빨간 우메보시를 완성시키기 위해 자소잎이 필요했다. 자소잎은 한국에서 많은 양이 재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수소문 끝에 어렵게 구해 약 한 달간 더 시간을 들여 염장과 색을 더하는 과정을 해야만 했다.
자소잎에 소금을 뿌리고 박박 문지르면 처음엔 뿌연 액이 나오다가 한 두 분 뿌연 물을 버리고 다시 자소잎을 문지른다. 팔에 쥐가 날 때쯤 자소잎에서 투명하고 고운 빛의 보라색 액이 나온다. 보라빛의 자소잎액과 자소잎들을 모두 염장되고 있는 매실 위에 올린다. 노란 매실이 보라색 자소잎액과 만나자 선명한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이때서야 나는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쯤 지날 무렵, 예상대로라면 8월 초쯤 장마가 끝나고 매실을 건조를 시키고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장마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2주가 더 흘러서야 장마가 끝났다. 장마가 끝나기만을 기다린 이유는 이 매실을 반드시 햇빛과 건조한 바람에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매실은 밤이슬을 맞아선 안된다. 그래서 아침에 햇살이 들 때, 채반에 매실을 건져 말리고, 밤에는 다시 매실을 자소잎액에 담그는 과정을 3박 4일 동안 반복하여 겉껍질은 보송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분홍빛의 우메보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중 가장 색이 빨갛고 모양이 예쁜 우메보시 몇 알들을 골라 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다이소 유리병에 담아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채비했다. 옷을 입고 머리를 매만지는 동안 우메보시를 계속 살폈다.
‘역시, 다이소 병에 담지 말걸 그랬나…’
그런 우메보시를 그녀에게 선물하고 나서 나는 굉장한 충만함을 느꼈다. 선물이 제 짝을 만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내가 심지어 파리바게뜨에서 식빵을 사서 선물했더라도 기뻐했을 테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에게 걸맞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초록색 텃밭에서 햇빛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녀는 내 빨간 우메보시의 값어치를 알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선물보다, 시간과 정성이 담긴 선물과 더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런 친구에게 우메보시를 선물하며 느껴본다.
@매주 일요일에 업데이트하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