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름 Nov 27. 2019

엄마가 아닌 시간

나도 내가 필요해.

 “이제 제발 그만하란 말이야!! 지금이 몇 신데!!”


이제 막 배변훈련을 마치고 변기에서 응가를 할 줄 알게 된 첫째에게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자려고 다 같이 침대에 누웠고 막 둘째가 내 품에서 잠들었는데 밤 10시 반에 응가가 마렵다니. 그렇지만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데, 그것도 가르쳐준 대로 변기에 응가를 하겠다는데 엄마가 소리를 질러버린 것이다. 


그렇다. 둘째를 낳으면 첫째와 다를 것이라고 했다. 다르다. 둘째는 첫째보다 쉽다. 첫째를 맞이한 후 나와 남편이 저지른 수많은 허튼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게 그저 장밋빛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를 키우기 쉽다고 해서 둘을 키우기 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둘을 키우는 것은 정말 전혀 다른 레벨이다. 


첫째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잠들 때까지, 즉 오후 2시부터 9시, 가끔은 11시까지 나는 그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욕구는 가장 뒷전이 된다. 엄마가 아닌 김로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단지 엄마이기만 한 그 시간은 밤중에도 종종 나를 찾아온다. 둘째가 잠에서 깨 젖을 찾으면 나는 또 내 수면욕을 내려놓고 젖을 물린다. 아이가 잠들지 못하면 너무나 잘 준비가 돼 있는 나도 잠들 수 없다. 아이가 아픈 날엔 항상 대기모드다. 


하루하루가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그만 멈추고 싶은데 멈출 수가 없는 달리기. 그런 시간을 살고 있는 내 정신이 온전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비이성적으로 화를 내고 이런 비이성적임을 비이성적이라고 꼬집어 말하는 남편이 비열하게 느껴진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비교해도 아이를 챙기는 것은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빡빡하다. 회사에 나간다고 해도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화장실을 가지 않고 일을 하지는 않는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마음 놓고 먹고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다. 어쩜 아이들은 가장 무서운 상사다. 


지난 토요일 밤,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날 밤엔 첫째가 나에게 다가와 "엄마 좋아"라며 살을 비비는 것조차 견딜 수가 없었다. 애교를 부리는 첫째에게 나는 결국 어두운 표정으로 “저리 가서 놀아”라고 해 버렸다. 그래도 계속 엄마 살이 그리운 첫째는 내게 다가왔다. 나는 과부하가 걸린 기계처럼 모든 것을 중단하고 남편에게 도저히 안 되겠다며 마사지샵으로 향했다.


도망치듯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는 나 자신이 혼자만 너무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누가 보면 무슨 범죄 현장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습이 자식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엄마라니. 부족해 보이기도 못 돼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 시간 마사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아이들을 향해 웃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엔 졸음도 왔지만 그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엄마가 아닌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 여동안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 앞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아닌 시간이 내 숨통을 트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엄마인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철저히 ‘엄마가 아닌 시간’이다. 첫째가 유치원에 간 사이  잠든 둘째를 보며 쉬는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조차 나는 둘째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정말 그 누구도 내가 필요치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 역할을 하지 않는 시간, 내 욕구와 관심이 먼저이고 내가 누구를 위해 대기할 필요도 없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첫째를 뱃속에 품은 순간부터 엄마였고 죽어서도 엄마가 아닌 순간을 맞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가 아닌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은 어쩌면 내 일을 하는 것, 혹은 글을 쓰는 것일 수도 있고 커피숍에 앉아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 정해놓은 시간까지는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시간. 나를 돌보거나 발전할 수 있는 시간. 그냥 나인 시간. 돌봐주지 못 한 나 자신을 달래주는 시간. 결국 그 시간은 좋은 엄마가 되는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한 번만이라도 해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