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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름 Sep 16. 2019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한 번만이라도 해봐”

나에게 가장 완벽한 가르침

얼마 전 동생이 어린 시절 아빠에게서 받은 편지를 보여주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청소년기를 아빠와 떨어져 지낸 나는 동생에게 아빠가 보낸 다정한 편지를 보자마자 유치 찬란한 질투심을 느꼈다. 


미국에 있는 동생을 미국 출장을 오면서도 못 보고 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필요한 것을 말해주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아빠의 말은 대학원생이 돼 아빠 앞에 나타난 내가 아빠와 동생 사이와 똑같은 부녀 관계를 아빠와 가질 수 없다는 확신을 한 번 더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다행히 질투가 지속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빠가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질투와 아쉬움을 희석하기에 충분히 좋은 문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읽은 문장 중에서 가장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문장이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한 번만이라도 해봐”


딱히 논리적으로 맥락을 설명하지 않은 이 짧은 문장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지를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옳다고 생각하는 데도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행동하지 못한다. 혹은 ‘다음에 해야지’라며 당장 양심이 난처하게 만든 그 상황에서 빠져나온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그 행동을 하게 만드는 데는 적게는 한 가지, 많게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분명 내가 무언가를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유가 될 텐데 “옳다”는 이유는 다른 것보다 큰 가중치가 부여되지 않는다. 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이득이다”와 같은 어쩌면 딱 와 닿는 이유들은 커다란 가중치를 얻는다. 


그래서 그동안 종종 뭔가가 옳다는 이유만으로는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아빠가 한 말에는 옳다는 이유만으로 행동하는 것에 따르는 부담을 줄여주는 문구가 붙었다. 그것은 바로 “한 번만”과  “해봐”다. 뭐든 한 번만 해보는 것인데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실패하면 또 어떤가. 다음에 안 하면 되지. 


여기에 “한 번만”에 붙은 “이라도”는 나의 양심을 자극한다. 옳다고 믿는 행동을 여러 번 할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 딱 한 번만 이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한 번 해본 행동은 두 번째에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그렇게 한 번만 해 본 행동이 내 삶 전체를 뿌듯하게 만들 수도 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한 번만이라도 해봐”


비록 아빠가 내게 직접 해준 말은 아니지만 직접 들었다고 생각하고 평생 내 마음속에 심기로 했다. 내 아이들에게도 전해야겠다.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라고. 이만큼 자식에게 바르게 살아갈 것을 교육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아빠, 고맙습니다.  그렇게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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