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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름 Nov 30. 2019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아도 될까요?

나의 사회성에 대한 고찰

어릴 때부터 여러 명으로 구성된 ‘조직’에 끼는 것은 나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줬다. 나는 무리 중 한 두 명이 좋을 뿐인데 늘 같이 만나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그 무리 중 한 명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까지 포기하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인간관계를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직을 위해 자기소개서 어딘가에 내가 얼마나 사회적인 인간인지를 드러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고 그런 일화를 떠올릴 수도 없었다. 


나를 옆에서 지켜본 남편조차 나의 이런 인간관계는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따가웠다. 나 역시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적어도 사회성이 좋아 보이고 극단적으로 말해 정상으로 보이고 외롭지 않아 보이니까. 


나는 늘 한 두 명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도 친한 친구 한 명이 남았고 고등학교 때도 그렇다. 대학 때는 늘 연애 중이었고.. 회사에서도 동기들과 다 같이 만나는 자리는 부담스러웠고 한 명 씩 일대일로 만나는 게 편했다. 미국에 와서 만난 아줌마 그룹에서도 나는 결국 빠져나오고 말았다. 나 빼고 4명 중 두 명과 관계를 맺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기간, 나는 나의 사회성에 대해 고민했다. 특히 온갖 조직에 섞여 ‘좋은 사람’, ‘사회성 좋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남편과 내 모습은 너무 비교됐다. 나는 까탈스럽거나 성격이 더럽거나 인간에 대한 정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듯했다. 


내 인간관계에서 발견한 문제점은 내가 완벽한 사람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불편한 점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복수로 구성된 어떤 조직에서 특정인 A가 나에게 지속해서 불쾌감을 줄 때, 나는 그 조직에 머물기 위해서라도 A에게 문제 제기를 하거나 나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특성으로 인정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많은 조직에 속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남편의 경우에도 조직 구성원들이 100%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란다. 그리고 해당 문제가 남편을 계속 괴롭힐 경우엔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그 상황을 해결해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내가 선호하는 일대일로 구성된 인간관계에서는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짜인 듀오는 대부분 크게 불만이 없는 경우가 많고(불만이 있는 경우 아예 맺어지지 않는다) 불만이 있으면 문제를 제기하는 게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바뀌어야 할까? 나는 꾸준히 어떤 집단에 속해서 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큰 그룹에서 정보도 얻고 도움도 받고 도움도 주며 살아가는 게 현명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나의 본성을 벗어나는 일이라면?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혹은 내가 죽으면 같이 슬퍼해줄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게 아니라면, 내가 많은 사람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그래야 할까? 


정답은 없겠지만 결국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잘 지내는 내가 되고 싶다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리 중에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문제를 해결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지 않다도 된다. 


나는 최근 굳이 그러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자연스럽고 싶다. 그냥 내가 되고 싶다. 보기엔 좋겠지만 활동적이고 늘 많은 사람 틈에 섞여 있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마치 구글의 엔지니어가 멋있어 보여도 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내 적성이 아니거나 내가 소질이 없는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무리에 껴서 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무리 지어 다니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동안 이런 나의 성격 탓에 아이의 플레이데잇 상대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사람 잘 사귀는 아빠가 만들어줘도 된다. 


무리에 속하지 않아도 뭐 어떤가.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몇 명의 사람들 속에서 외롭지 않은 것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무리에 속하지 못 한 누군가에게 이 글이 힘이 되길 바라며 무리에 속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적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인냥 취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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