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20대의 다이어리에는 가만히 있어도 있어 보이는 여자가 가진 3가지가 적혀있었다.
첫째, 잡티 없이 깨끗한 피부
둘째, 윤기 흐르는 머릿결
셋째, ...... 기억이 안 난다.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던 사춘기의 여드름과 스트레스성 성인여드름을 겪으며 피부과와 피부관리실을 수차례 드나들었다. 한때의 처방일 뿐, 수시로 올라오는 유혹을 지나치지 못하는 손가락 때문에 첫 번째부터 현생에서는 글렀다.
다행히 아빠의 가는 라면곱슬머리와 엄마의 굵은 직모 유전자의 조합으로 얇은 직모의 진갈색 머리인 덕에 그나마 두 번째는 통했다.
세 번째는 아마도 흰 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예쁜 뭐 그런 거였던 거 같은데 나에겐 북극과 남극의 거리만큼이나 먼 이야기로 기억한다. 세상 사람들 눈이 오목렌즈가 되지 않는 이상은...
그렇게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긍정회로를 돌리며 살았다.
찰랑찰랑 윤기 흐르던 머릿결은 직장생활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새치를 생산했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염색라이프로 접어들었다. 처음 새치염색을 하던 날의 참담함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까만 생머리를 얻었고 얇았던 모발이 오징어먹물 염색과 블랙헤나 덕분에 굵어지고 탄력이 생겼다. 이를 두고 전화위복이라 하겠다. '엘라스틴 하세요'보다 더 찰랑거렸으니 뿌듯할 만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를 얻을 수 없으니 두 번째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기는 찾아오는 법. 결혼을 앞두고 검은 머리는 연상인 신부의 나이를 더 들어 보이게 한다는 디자이너의 조언으로 6번의 탈색과 염색을 했다. 그 당시에는 어려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머릿결은 생각지도 못했다. 결혼 후 밝은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염색을 지속했고 어느 날부터 거칠어진 머릿결이 신경 쓰였다.
결국 단발로 자르고 헤나로 다시 염색을 하며 예전의 머릿결을 찾으려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갑자기 앞머리가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평생 직모인 줄 알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곱슬모였다니 충격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는 백조였다는 아름다운 결말이라도 있지 이건 너무 비극이다.
그러다 임신을 하고 모유수유를 하면서 시판 염색 대신 헤나 염색을 하자다시 머릿결이 튼튼해졌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새치라고 말하고 싶은 흰머리가 늘어나면서 점점 커버가 안된다. 게다가 머리카락이 한 달에 2센티씩 자라는 거 보면 나에게 넘치는 건 지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단백질 과잉인가 보다. 사진을 찍으면 더 티가 나서 누가 봐도 부부가 아닌 누나와 동생의 가족사진이 돼버린다.
그래서 결심했다. 밝게 빼자!
밝은 머리로 염색을 하자 흰머리가 올라와도 티가 덜 나고 나이도 어려 보여 아주 만족스럽다. 그렇게 2년 정도를 염색하던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뭔가 빛난다.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 나이가 들면 하관이 넓어진다는데 하관이 아닌 이마가 넓어졌다. 맙소사, 탈모! 그것이 진행 중이었다. 더 이상 직모, 곱슬모, 검은 머리, 흰머리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런 건 있을 때 하는 배부른 걱정이었다. 이건 있고 없고의 중차대한 문제다. 거울을 보고 한숨만 쉴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탈모에 아주 관심이 많은 신랑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40대에 탈모로 인해 머리를 심으셨던 아버님 덕에 20대부터 탈모관리를 하던 신랑은 누구보다 나의 걱정에 공감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안겨준 3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맥주효모 샴푸와 솔가 브루어스 이스트, 그리고 미녹시딜 여성 탈모증 치료제였다. 일단 4개월은 감고 먹고 발라보라고 사서 안겨주며 소분까지 해주니 아주 바람직한 탈모동지다.
약에 대해서 꼼꼼하게 설명해 주며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아침에 일러나서 약 챙겨먹고 탈모되는 부분에 발라줘. 자기 전에는 바르지 마. 연두빛깔아이가 자다가 약 묻으면 안 되니까."
"왜? 몸에 안 좋아?"
"이상한 곳에 털이 날 수 있어."
애 아빠로서도 아주 만족스럽다. 그나저나 아이가 만졌는데 털이 날 정도로 효과가 좋다니 기대가 아주 크다. 머리에 바르고 마무리로 눈썹에 발라주고 있다. 바르고 바로 머리를 감지 말라는 말에 외출할 때 모자를 챙겨 쓰는 습관도 생겼다. 그래, 4개월만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