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시리즈 #일기만세
일기는 거의 데스노트 수준이었다.
요즘 즐겨보는 알쓸인잡을 보다 본인의 일기는 거의 데스노트 수준이었다는 채경님의 말씀을 듣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일기도 거의 울음바다, 짜증투성이, 울분잔치로 가득 찬 감정쓰레기통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지나간 일기를 읽으면 잔뜩 써놓은 억울한 감정들의 향연에 순간 일기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쩌랴... 나의 속내까지 묵묵히 들어주는 것은 일기밖에 없는 것을. 진심으로 미안했는지 민망했는지 한 달간 일부러라도 '감사일기'라는 순한 맛 일기를 적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역시 제 맛은 들끊는 감정들로 가득 찬 매운맛 일기인 듯하다.
마음 답답하게 슬프거나 화가 날 때 무조건 일기를 적었다. 평소에도 적지만 그런 날은 꼭 일기를 찾았다. 우스갯소리로라도 뭔 일이 있으면 "집에 가서 일기 써야겠다."라는 말을 주변인들에게 던졌다. 근래에는 종이 일기장에서 인터넷 기록으로 넘어갔는데 하얀 바탕 위에 생각나는 말을 무수히 적다 보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심지어 해결방법까지 생각나는 묘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감정을 다스리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나 순간적인 격한 감정으로 해안이 어두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뚜렷하게 서서히 활자 위로 올라오게 해주는 것이 일기리라. 나의 무의식일까, 아니면 나를 도와주는 자아일까, 나의 천사일까, 일기는 순식간에 위로를 던져주고 길을 보여준다.
그러니 마음 먹먹할 때는 온갖 생각과 마음을 글로 적어보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적어보는 것도 꽤나 후련한 방법이다. 그렇게 적다 보면 어느 순간 '이래야지', '저래야지'라는 말미로 마음의 갈피를 잡아준다. 용기를 준다.
글로 받는 감정 테라피, 일기
적는 행위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
초등학교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나의 일기 역사는 시작되었다. 방학 때 밀린 일기 쓰기는 국룰아니던가. 단순히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어 행복해하던 일기의 내용은 점점 커갈수록 다양한 일상과 생각들로 가득 찼다. 일기만으로도 내가 이렇게 성장했구나를 느낀다. 일기의 몇 자 안 되는 글귀가 그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쌓여 나의 글쓰기에도 큰 도움을 준 듯하다. 일기 자체의 기승전결 문장은 엉망이었으나 감정을 담아 쓴 내용에는 나를 울컥하게 하는 짧은 단어가 혹은 짧은 문장이 툭 튀어나왔다. 그것은 하나의 수확과 같다고 할까. 방황하는 글귀 안에서도 '적는다'라는 행위 자체는 글실력에 충분히 보탬이 되었다.
알쓸인잡에서 논하던 섀클턴은 남극을 정복하기 위해 대원들을 모아 떠나지만 얼음 속에 갇혀 남극 탐험은 고사하고 구조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시간을 맞았다고 한다. 그렇게 남극 탐험은 실패했지만 '위대한 실패'라고까지 회자되는 섀클턴의 도전은 전원이 무사 귀환한 것에 의한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전원이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섀클턴의 우수한 리더십이라 하는데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음악과 일기였다고 한다. 대원들은 하루하루 적어나가는 일기에서 생존의 힘을 얻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일기는 과거를 논하지만 결국에는 미래의 나를 위해 적는 글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일기도 다양한 버전으로 기록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지혜인 듯하다. 화풀이용으로만 기록되는 일기대신 확언일기, 감사일기, 회고일기 등 주제를 잡아 기록하는 것도 나에 대해 몰랐던 내면의 감정과 생각들을 다양하게 끌어줄 수 있는 요소가 될 듯싶다. 오직 나에게만 주어지는 짧은 기록의 글, 그 글귀 안에 이미 삶의 방향과 방법, 꿈이 모두 담겨있으리라. 그러니 찬찬히 기록하고 천천히 음미해 보라. 그것이 일기이다!
※ 이미지 출처 : 1) 2022.12.23 / 4화 알쓸인잡 <기적을 만든 인간> 중에서
2) Photo by lilartsy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