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먼저 기분을 느낀다는 거 아니
네가 기분 좋을 때
머리카락들이 점프를 하고 있다는 것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을 때
머리카락은 우울처럼 눅눅하다는 것
슬픔을 떼내듯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떼어놓을 때
손이 감당하고 있는 복잡한 무게
머리를 감을 때 물처럼
흩어졌다가
모였다가
엉클어졌다가
물도 그렇거든
엉킨 물속에 손을 씻으면 자꾸 손을 들여다보게 돼
늘 흘러가는 것 같아서
어떤 그릇에도 군말 없이 담겨서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지
여름밤 괴담처럼
등골 서늘해지지만 헛것이야, 헛것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
그런데 나는
그런 이야기에 놀라고
네가 없다고 하면
귀신처럼 사라지는
귀신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밤이나 낮이나
놀랄 타이밍을 기다리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그런 순간을
머리카락이 머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런 순간을
내가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빗고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을 빗어 내리고 있었던 거라고
보이지 않게 아주 조금씩
오늘을 잊지 않고 자라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