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업종이나 직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주 N회 재택근무 정도의 근무조건을 건 회사들이 꽤 쉽게 눈에 띈다. '재택근무하는 회사'로 가고 싶어 이직하고 싶은 사람들도 면접과정에서 종종 눈에 띄곤 한다.
민병철교육그룹도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엄밀히 말하면 원격근무다. 또한, 주 N회나 임시 재택근무가 아닌, 원격근무가 기본적인 근무형태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시작했던 재택근무를 2021년 공식 제도화를 통해 정착시킨 케이스다. 사내에서 부르는 공식 제도명은, 자율근무환경제도(Work from Anywhere)로 약자로 WFA라 부른다.
방점은 'Anywhere', 재택근무가 아닌 원격근무다. 일하는 공간을 집으로 한정짓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제도는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당신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라는 것.
WFA는,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 일이 가장 잘되게 함으로써, 결국 구성원도 조직도 모두 이길 수 있는 문화적 장치다.
이 말은 엄청나게 자유롭고 멋져보이지만, 그 의미와 속내를 겹겹이 뜯어보면 굉장히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자율과 책임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싶은 곳을 선택하게 하는 것 같지만, 이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방종이나 무조건적으로 자유할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일을 잘한다는 가정 하의 자율, 즉 책임, 달리 말하면 고강도의 성과를 더더욱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직문화담당자들은 원격근무의 도입과 정착에서 조직의 성과를 이끌기 위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지난 2년간 원격근무 환경에서 일하고 제도를 보완해가며 몸으로 깨달은 몇 가지를 공유해본다.
고성과를 내기 위한 기본이다. 하지만 원격근무환경에서는 이 부분이 더 중요해짐을 느낀다. 아마 오피스라면 주변 사람들이 지금 특히 어떤 이슈로 헐레벌떡 바삐 일하는지 바로 감지할 수 있을테지만 원격근무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공유되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일(하지만 조직적으로는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일)에 매몰될 확률이 더욱 커진다. 조직 단위의 업무 파이프라인, 업무별 목표, 현 상황이 명확히 가시화하고 공유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해진다.
서로의 업무가 더욱 투명하게 공개되고, 실시간으로 조직이 움직이고 '일이 되고 있는' 모습을 보려면 온라인 환경 상 디지털 협업 툴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원격근무를 첫 도입할 때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왜냐면 결국 일이 안 되면 조직은 계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규입사자를 대상으로 툴 사용 방법에 대한 상세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도 신규 업데이트 되는 기능이나, 잘 사용하지 않지만 알고보면 유용한 기능들 리마인드를 주기적으로 주는 게 필요하다.
또한, 공식적으로 업무 협업툴을 지정했다면, 툴의 정착, 즉 온라인 환경에서의 업무가 효과적으로 정착되기 위해 이 툴을 통해서 업무가 진행되어야 함을 계속해서 강조, 체크하고 관리해야 한다.
동일 기능으로 여러 툴을 쓸 필요는 전혀 없다. 조직에 커뮤니케이션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조직에서 쓰고 있는 툴이 있다면 일단 그 툴의 기능을 100%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지 검토해보자.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툴을 검토해야 할 텐데, 이때는 반드시 현업실무자들의 업무 프로세스를 같이 점검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효과,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돕는 툴이 무엇인지 같이 검토하고, 우리 조직의 업무방식에 가장 맞는 툴을 결정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이 맥락에서 다른 회사들이 많이 쓴다, 유명하니 우리도 써보자는 접근의 툴 도입은 필패한다.
한편, 다양한 기능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너무 많은 툴을 사용하게 되면, 툴 별로 남겨진 업무 데이터들이 유기적으로 관리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고, 조직구성원들이 툴 학습에 투입할 에너지가 너무 많아지니 주의하자. 지속적으로 툴 학습을 시킬 HR의 부담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정말이지 더욱 중요해진다. 조리있게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원격근무환경 하에서 일해보니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훨씬 더 중요함을 업무 현장에서 느낀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조직의 목표 얼라인먼트와 툴 사용과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우리가 어떤 이유로 지금 이런 업무를 추진했고 우리에겐 이런 목표와 우선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논의했다는 내용들의 기록이 남겨질 때, 또 이 기록을 계속 되새기며 복기할 때 우리가 지금 이순간 함께 일하는 ‘Why’가 명확해진다. 조직의 성과는 물론, 개인이 일을 해나갈 때의 의미감을 되새길 수 있다.
또한, 조직 내에서 사용하는 협업 툴들이 효과적으로 쓰이려면 그 안의 콘텐츠들(=업무 과정과 아웃풋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텐데, 이 콘텐츠는 바로 텍스트로 생산된다.
즉, 직원들이 글로써 내 일의 정리를 못해낸다면, 회사가 일을 잘하라고 아무리 기가 막힌 엄청난 툴을 도입해도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기업이 여력이 되면 업무 공유를 효과적으로 하는 비즈니스 글쓰기 교육을 진행해도 좋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조직들은 업무 공유시 필수적으로 녹여야 하는 내용들을 목록화 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기록되고 남겨진 내용은 자연스럽게 업무 현황 기록, 나아가서는 조직이 당시 처한 시장의 상황과 의사결정 방법을 반추할 수 있는 역사로 남는다.
온라인 협업 상 커뮤니케이션의 작동기제는 오프라인과 분명 다르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원격근무 도입은 필패한다. 혼자 일하게 되는 원격 근무환경에서는 주변에 동료가 앉아있지 않다. 잠깐 허리를 쭉 뻗어 사무실을 둘러봤을 때, 내가 찾는 사람이 자기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를 한번에 알 수 있지도 않다. 즉, 오피스에서 해오던, 우리가 익숙한 즉시적 소통이 어렵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이 부분이 가져올 결과를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원격근무 하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비동기로 진행된다(=동료가 다른 업무로 내 말에 바로 반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이해를 전제로 협업이 진행될 때, 조직 구성원들의 불안감이 내려간다. 즉, 내가 보낸 메신저나 내가 업로드한 포스트에 바로 답이 안달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재촉하고 감시하게 된다.
이 부분의 적용이 참 어려운 것이 바로 메신저다. 원격근무를 도입하면 당연하게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니 메신저 소통량이 늘어나면서 피로해지기 마련인데, 이때 반드시 메신저 사용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메시지 전달방법을 먼저 리마인드하는게 필요하다. 메신저 알림이 지나치게 많이 쌓이지 않도록 상대를 배려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한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내는 것, 상대의 답이 늦어질 것을 예상하여 내가 생각하는 시점보다 일찍 상황을 공유하는 것, 상대가 궁금하거나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보들을 미리 전달하는 방법들이 주요 골자가 될 것이다.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듯이, 원격근무 역시 아쉬운 점은 있다. 한 주제에 딥 다이브하여 논의해야 하는 워크샵 형태의 미팅, 혹은 구성원간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팀워크 빌딩 활동 등, 여전히 소통과 협업의 영역은 여전히 대면활동이 효과적일 수 있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어떤 일이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진행할 때 효과적인지를 조직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근무형태를 자유롭게 시프트할 수록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사람들은 효과적인 미팅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무실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별일이 없어도 ‘서로 너무 보고싶다’는 이유만으로 출근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온라인이라는 제한적인 환경에서 직원 개개인이 각자만의 근무공간에서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온라인 팀빌딩 활동, 같은 취미를 가진 다른 팀 동료 만나기 등과 같은 가벼운 랜선 액티비티 등 조직 내 일상에서의 접점도 계속해서 만들어주는 일 역시 필요하다. 적절한 오프라인 활동으로 소속팀, 혹은 조직 전체가 모이는 이벤트를 만들고 시각적으로 나 홀로 일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상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 이 글은 2022년 8월 19일 원티드 인살롱에도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