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직장인이라서 저희 부부는 주로 주말과 평일 주말을 이용해 신혼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결혼식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살 집을 구하지 못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죠. 당시는 전세 매물이 귀한 시절이라서 깨끗하게 수리된 집을 알맞은 예산으로 얻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부동산 초보 시절에는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온 매물 정보를 보는 것도 애먹는 일이었습니다. 수리, 반수리, 올수리, 특수리, 특특수리...오래된 아파트는 중개소에서 기본적으로 매물 정보에 이런 특징들을 기록해서 올리는데 수리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다양한 말을 붙인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몇 군데 집들을 둘러보니 화장실과 주방 정도가 고쳐진 집이면 올수리에 속하고, 여기에 몰딩과 LED전등처럼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신축처럼 꾸며놓은 집들은 특수리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많이 수리된 집일수록 전세 보증금은 더 높았습니다. 잘 수리된 집을 얻고 싶었지만,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부부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이 전혀 받지 않고 결혼준비를 하자고 결심했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재정적 지원 역시 기대할 수 없었죠.
그렇게 여러 집들을 돌아다녀보던 어느 평일 오후, 부동산 소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공무원 분이 세를 주고 있는 집이 있는데요, 시세보다 저렴해요. 1억 2천이라네"
당시 1억 2천만 원이면 17평 아파트치고는 약간 저렴한 편에 속했습니다. 시세가 1억 3천에서 4천이었거든요. 거실 겸 방이 하나, 그리고 또 다른 작은 방과 화장실로 구성된 20년이 넘은 아파트였어요. 그날 저녁 재빠르게 퇴근한 후에 부동산에 들러 바로 그 집을 보러 갔습니다.
밤이어서, 늦은 시간에 집을 본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선택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식이 얼마 남지도 않았고, 집부터 계약을 한 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신혼여행 계획도 짜야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신랑인 제가 축가를 부르기로 해서 노래 연습도 해야 했구요.
약간 들뜬 마음으로 그 집을 봤습니다. 신발장이 깨끗하게 수리되어 입구부터 첫인상이 좋더군요. 주방도 합격점이었습니다. 거실이나 방 상태도 깔끔했고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가 1년 만에 만기를 다 못 채우고 나가는 거라 도배를 할 필요도 없어 보였습니다. 합격! 하지만...
이 집의 화장실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한 번도 수리를 한 적이 없는 화장실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환풍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불을 켜면 환풍기가 돌아가지 않아 고요했습니다. 고요해도 너무나 고요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죠. 볼일을 보고 냄새가 잘 빠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명색이 신혼부부인데, 서로에 대한 환상을 너무 일찍 깰 필요는 없잖아요. 입구에서 느낀 환희가 아쉬움으로 바뀌어서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는 집으로 돌아가, 침대 맡에서 푹 쓰러졌습니다. 집을 구하는 것이 이렇게 피곤하고 쉽지 않은 것인지 뼈 아프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인생의 쓴 맛이 이런 것인지, 결혼 전에 하늘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구나'며 혼자 끙끙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집을 본 이후 일주일이나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는데, 그때 그 부동산 소장님으로부터 새로운 제안이 옵니다.
"선생님, 그 공무원 분이요. 1억 2천이 부담스러우시면, 반전세도 고려해 보겠다고 하네요. 연락 주세요"
처음으로, 반전세(보증부 월세)에 대해 알게 된 시점이었습니다. 부동산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죠. 이렇게 저희 부부는 보증부 월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