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 셀프 전세 재계약
소유권 vs 사용권, 집아 넌 누구 편이니?
복비를 아끼려고 직접 임대인과 전세 재계약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웹상에 돌아다니는 부동산 임대차 표준계약서를 다운로드하여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지만 누군가 제대로 작성했는지 검증해 줄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같은 직장에 다니는 인생 선배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계약서를 마련해 임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전세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부동산을 끼지 않고 저희끼리 하면 어떨까요? 계약서는 제가 작성해 뒀는데 보시고 의견 주세요”
“좋습니다. 사진 찍어 보내주시면 보고 말씀드릴게요.”
복비를 아낄 수 있어서 그런지 임대인도 호의적이었습니다. 전세금 조정을 한 푼도 해줄 수 없다고 말하던 그분이 맞나 의아했습니다. 특별한 의견이 없다고 답신이 왔고 계약 날짜를 신속히 잡았습니다.
장소는 저희 집으로 했어요. 집 상태도 점검할 겸 이곳에서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의도치 않게 대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화장실부터 베란다까지 쓸고 닦고 신경 쓸 부분이 정말 많았습니다. 거실에 탁자를 놓고 꽃병까지 준비했어요.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세금이 비싸지만 언젠가 우리 집을 가지고 말겠어!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잘 꾸미고 사는지 봐둬’라는 무언의 시위라고나 할까요.
시간 맞춰 저희 집에 들어온 임대인은 오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습니다. 서울에서 와서 화장실이 급하다면서요. 그 상황이 조금 우습기도 했습니다.
볼일을 보고 나온 임대인은 두리번거리며 한 마디 했습니다.
“깔끔하게 잘 꾸미고 사시네요. 계약서 준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이 집을 계약할 때도 얼굴을 보지 못한 임대인이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위임해서 중개인이 대신 계약을 했었어요. 그래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재빨리 그의 인상을 스캔했습니다.
검정 가죽 재킷을 걸치긴 했지만 그냥 평범해 보였어요. 부동산 중개인에게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50대 여성분이지만 미혼이라 부자라고 했거든요. 이렇게 부동산 중개소가 아닌, 저희 부부의 보금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니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임대인 소유의 집이지만, 사용은 우리가 하고 있는 집.
이 집에 인격이 있다면 과연 누구의 편을 조금이라도 더 들 것인지 궁금했어요.
그래도 기분 좋게 전세 재계약을 마치니 속이 후련했습니다. 무엇보다 복비를 아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부동산에 대해 조금씩 이해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