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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함수 Jun 28. 2023

위기 시 공중의 분노에 맞서지 말라

이코노미조선 [강함수의 위기관리 경영] 482호 2023.03.06 기고

온라인상에서 어떤 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콘텐츠가 많아지고 그와 관련된 기사가 게재되면 사람들은 불매운동이 실제로 거세게 진행되는 것처럼 인식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실제로는 매출에 영향이 없다는 보고를 받은 기업의 리더들은 별다른 대응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어떤 불매 원인이 된 사건이나 사고가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왜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비난과 욕설이 뒤섞인 댓글을 읽으면서, 문제를 제기한 자들을 이득을 편취하려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선 위기 대응을 위한 냉철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해관계자를 향한 커뮤니케이션 실수와 왜곡이 발생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소비자 분노 키운 ‘임블리’ 사태 


몇 년 전 ‘임블리’라는 쇼핑몰에서 호박즙을 구매한 한 소비자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호박즙 스파우트 파우치 빨대에 이물질이 묻은 사진을 올리면서 “호박즙에 곰팡이가 생겼고 (쇼핑몰) 게시판에 문의했는데, 환불은 어렵고 그동안 먹은 것에 대해선 확인이 불가능하니 남은 수량과 폐기한 수량 한 개만 교환을 해주겠다고 했다. 너무 어이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SNS를 통해 논란이 되자 회사 측은 제조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고 공지하면서 판매를 중단하고 마지막 판매분을 환불하겠다고 밝혔지만, 다른 고객의 사례가 공개되고 일반 고객들까지 인스타그램의 댓글에 비난을 성토하자 이 회사는 환불 관련 게시글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객 간 소통으로 인기 있는 쇼핑몰을 만든 회사가 사건이 터지자 다른 행동을 보여주면서 배신감을 느낀 고객들은 사실관계를 떠나 기존 제품의 구매 불만 등을 토로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분노란 불쾌 혹은 적대를 나타내는 강한 감정이라 하는데, 강도가 한정돼 있지 않다. 가벼운 불쾌감에서부터 통제 불가능한 격노일 수도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물건에 작은 하자가 있어도 그냥 다음부터 구매하지 말아야지 하는 고객도 있고 온라인 게시판에 의견을 달아서 보상을 요구하는 고객도 있다. 또는 방송에 제보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반응이 있긴 하지만, 사실 모두가 분노의 표출이며 행동이다. 또한 분노는 본인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있지 않더라도 이런 상황이 나에게 발생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인지 상황’에서 위협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고객 분노 이성·적절한지 따지지 말아야 


기업은 이해관계자의 분노를 ‘허(許)’한 후에 대응해야 한다. 회사에 대한 분노가 합당하냐, 이성적이냐, 적절하냐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발생한 사건·사고가 그렇게까지 분노할 일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정작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화장품을 사용한 후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사 소견서를 첨부해 피해보상을 이야기하는 고객을 상대로 다른 고객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일차적 커뮤니케이션이 그 소견서가 허위일 수 있다고 말하고, 소송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공중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자사의 화장품을 직접 사용한 고객으로서 해당 화장품에 대한 문제나 부작용이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고 고객의 입장과 ‘화가 난’ 지점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먼저 이행돼야 한다.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해 기업을 공격하는 ‘블랙 컨슈머’에 대한 대응을 법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이해관계자의 분노를 우선 ‘허’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합리와 균형이 생겨 실수와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고객의 불만 하나가 대국민의 분노로 전환되는 지점에는 언제나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초래하지 않은 위협을 느낄 때, 그들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가치관이 위협당한다고 느낄 때, 공정한 대우를 받지 않음을 느낄 때, 자신들의 요구와 요청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이들의 분노는 더욱 커진다. 앞의 임블리 사례에서 ‘호박즙’ 곰팡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기업이 취한 행동, 이들의 의사결정에 더욱 분노하는 것이다.


 왜 그런 제품을 팔았냐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내 생각과 의견이 무시당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 분노는 전이되고 많은 사람의 동조와 참여를 가져온다.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다. 따라서 그것이 영업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의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공중의 분노는 기업의 명성을 갉아 먹고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언젠가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공분은 이슈를 지속시킨다”


분노를 다스리는 기본 원칙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피해의 원인 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피해를 야기한 회사는 제품과 서비스로 인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보여야 한다. 책임과 책임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책임이라고 하면 회사는 소비자와의 계약법적 책임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책임 수용에서 머뭇거리고 명확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 회사의 리더가 명쾌한 책임의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으면, 모든 조직의 대응 수준은 그 수준에 맞춰져 회피하거나 축소하려는 기준으로 대응하게 된다. 책임감은 상황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도리’라는 범주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실 책임감의 수용 여부는 기업에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정도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대응했지만, 오히려 공분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있다. 물질적 보상책이 턱없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절차와 설명의 태도, 리더의 강한 의지 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직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리더가 그 사안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하고 있는가로 투영해서 인식한다. 책임 수용의 실패는 리더가 잘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책임 수용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흑백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일종의 ‘회색지대’다. 피해 보상이라는 것도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근거도 있어야 한다. 기업이 무턱대고 다 책임지고 원하는 대로 보상하겠다고 말할 수 없다. 일괄적인 보상을 한다고 했지만, 피해 정도가 다른 사람에게는 부당한 상황이 돼 그 ‘억울함’을 호소한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사과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진심을 어떻게 알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전달하려는 언어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세밀하게 따져가며 선택해야 하는가에 달려있다. 


‘회색지대’ 상황에서 리더가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결핍’이다. 만약 A를 결정한다면, 또는 B를 실행한다면, 반대로 A를 안 한다면, B를 안 한다면, 이런 식으로 상황을 가정한 뒤 어떤 이득이 있는지 보다 어떤 ‘결핍’이 발생하는가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이 결핍은 이해관계자 입장에서 살펴야 한다. 사실 말이 쉽지 이해관계자 입장을 고려해 어떤 결핍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도 난해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핍을 가지고 위기 의사결정을 하자는 것은 위기관리의 목표와 연결된다. 손실을 아예 없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표는 손실을 최소로 줄이는 것과 최대한 빠르게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로 비즈니스 업무 상황을 회복하는 것이다. 결핍을 크게 인식하는 사람들의 ‘공분’은 이슈를 지속시킨다.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끌고 언론은 해당 상황을 계속 취재하려고 한다. 여론이 악화하면 정부, 국회, 시민단체의 개입과 행동은 커질 수밖에 없다. 위기관리에서 ‘분노’의 감정을 먼저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다. 


원본: 강함수의 위기관리 경영 위기 시 공중의 분노에 맞서지 말라 (econ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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