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강함수의 위기관리 경영] 508호 2023.09.11
위기가 발생한 기업마다 어느 타이밍에 입장을 발표할 것인지 매번 고민한다.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상황 대응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사고 발생 원인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론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신속해야 한다. 여기서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꼭 상황 전체를 종합해서 이야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발생한 위기 유형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회사는 위기와 관련된 이해 당사자에게 상황을 어떻게 조치하고 있으며 무엇을 알고 있고 위기 해결을 위해 앞으로 어떤 조치를 할 것이라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궁금증, 의혹, 의문을 줄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발생한 위기의 상황 파악을 마치고 어느 정도 사건·사고 수습이 되고 나면 회사는 위기에 대해 ‘사과’를 포함한 입장을 발표할 것을 검토하기 마련이다. 위기 사안의 경중, 즉 피해나 사회적 혼란의 정도에 따라 해당 입장 발표는 ‘보도 자료’ 형식으로 미디어를 통해 공개할 것인지, 미디어 기자회견을 통해 전달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이 경우 언제, 어디서, 누가(입장 발표, 회견 참석), 어떻게(발표만 할 것인가, 질문을 받을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 것도 쉽게 이뤄지지 않지만, 의사 결정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내용 때문이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 입은 이해 당사자를 보호하고 아픔을 공감해야 한다는 위기 커뮤니케이션 원칙은 이제 기업 리더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반쪽 사과다’ ‘알맹이가 없다’ ‘사과만 하면 끝이냐’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는 식의 비판과 비난을 받기 쉽다.
실수나 잘못에 대해 재발 방지와 향후 개선을 위해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은 기업 내부의 의사 결정 과정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사건·사고가 갑자기 발생하고 나서 긴박하게 진행되는 상황 전개 과정에서 위기 상황의 발생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 범위, 이해관계인 입장, 회사의 한정된 자원, 주주 입장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신속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유사한 위기 사례를 찾아서 (과거와) 유사한 문장 표현으로 사과문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개선책이 통하지 않으면 되레 비판받아
“이와 함께 임직원의 인성 교육 시스템을 재편하고 대리점과 관련한 영업 환경 전반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이번과 같은 사례가 결코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히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이 문장은 2013년 남양유업의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한 녹취록이 유튜브에 공개되고 보도가 이어진 후 발표한 1차 사과문의 마지막 단락이다. 재발 방지와 개선책을 담은 의사 결정 내용이겠지만, 책임을 임직원 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본사안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대리점 밀어내기 횡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을 몇 년 전에 받은 바 있고 해당 대리점주의 억울한 입장이 담긴 동영상은 유튜브에 오래전부터 공개돼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재발 방지와 개선책을 결정할 때는 본위기 사안을 발생시킨 문제점을 우선 명확히 짚고 생각해야 한다. 그 문제점을 지금 시점에서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는 ‘개선 행위’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고 비판과 비난 여론이 지속적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또 긴 시간을 요하는 과정인데, 그 중간에 유사한 사건·사고가 발생해 이전에 발표한 ‘개선 행위’가 언급되면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위기관리보다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 중요
작년 10월 경기 평택 소재 제빵 공장(SPL)에서 20대 여성 근로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과 관련, SPC그룹 회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다시 한번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SPC 사장도 직접 재발 방지 및 개선 대책으로 “전사적인 안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향후 3년간 총 1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룹 전반의 안전 경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고 직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인증받은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그룹 전 사업장에 대한 ‘산업 안전 진단’을 실시하고 ‘안전경영위원회’를 독립적으로 구성해 외부의 관리·감독 및 자문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올해 8월 그룹 관계사의 성남 공장에서 근무하던 50대 여성 근로자가 이동식 리프트와 설비 사이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병원에 이송됐지만, 며칠 뒤 사망했다.
기업 입장에서 위기관리보다 먼저 고려돼야 할 것은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다. 몇십 년간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하면서 기업의 비즈니스 체계가 구축되고 일련의 업무 관행이 고착화된다. 기업 내부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수준, 윤리적 기준, 내부 조직에서 일하는 방식의 수준, 비대해진 조직을 관리하는 정책 기준이 ‘변화되는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최대한 발생하지 않기 위한 다양한 대응과 조치를 진행하는 것은 사실 단순히 현장에 있는 직원의 인식적 차원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공장 기술 및 시스템의 작업 환경 문제, 오랫동안 고착화된 업무 방식 및 관행, 묵과되는 안전 수칙 등 한 번에 개선하기 어려운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이해관계인이 요구하는 기대치, 리스크 억제를 위해 투입해야 할 자원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위기 개선 행위의 관점을 비난과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한시적 행동이나 리스크 억제 차원에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담보하려는 비즈니스 행동으로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 제품에 이물질이 자주 나와서 고객 클레임이 많았던 기업은 클레임에 대응하는 조직 부서만 그 사실을 인지하고 대응해 왔지만, 어떤 사건의 계기로 위기가 발생하면서 제품 생산 과정에서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도록 포장지 개선과 그에 부합하는 여러 방안을 개발해 적용하는 계기가 됐다.
위기 이후 혁신적 전환 나선 LG유플러스
올해 2월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개인 정보 유출 및 서비스 중단 위기를 겪었던 LG유플러스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사이버안전혁신추진단을 구성하고, △사이버 공격에 대한 자산 보호 △인프라 고도화를 통한 정보 보호 강화 △개인 정보 관리 체계 강화 △정보 보호 수준 향상 등 4대 핵심 과제에 102개 세부 과제를 수행하는 데 1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위기 개선 행위는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혁신적 활동으로 연결돼야 한다. 흔히 위기관리 체계를 사전 준비, 위기 대응, 위기 회복으로 나누면서 위기 회복을 ‘이미지 회복’이라고 주로 지적하곤 한다. 손상된 기업 ‘명성’을 좋게 만들기 위한 전략을 구축해 실행한다는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과거를 ‘소환’할 수 있는 역량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기업이 과거에 무슨 행동을 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필요할 때마다 끌어올 수 있다.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공개적이다. 위기 회복이 아니라 이제는 위기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명성을 회복하는 최고의 전략은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며 그것을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소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