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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돌씨 May 12. 2022

때론 정보가 없는 것도 도움이 된다

:  간절함보다 운이 조금 더 컸던 면접시험 이야기

 

 편입학 면접시험을 보러 가는 날, 지금은 그날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옛날 일이 되어 버렸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면접시험에 앞서 찾아본 바로는 내가 지원했던 학교는 내가 지원한 해에 처음으로 편입학 시험에 2차 시험으로 면접시험을 시행했다. 그런 이유로 족보라고 할만한 예상 질문은 찾을 수 없었고, 다른 학교의 시험 질문을 찾아보거나 스스로 머리를 쥐어짜 내어 예상 질문을 만들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험 전날 스무 개정도의 면접 예상 질문과 답변을 숙지하고 잠자리에 누우며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예상 못한 질문이 나오면, 그 땐 그냥 부딪쳐보자.'





 면접시험의 대기 장소는 빈 강의실이었다. 최종적으로 4명을 뽑는 시험이었고, 자리에 앉으니 진행요원이 다가와 "사전 질문지"라는 것을 나눠주었다. 면접을 하기 전에 본인의 이력이나 경험 등을 간단하게 적어내는 것이었다. 별 부담 없이 적어내고 한참을 기다리니 차례가 왔다.


면접장에 들어가니 면접관은 여성 한 명과 남성 한 명으로, 두 분 다 교수님인 듯했다. 인사를 하자 두 분은 사전 질문지를 쭉 훑어보며 질문을 시작했다.


지원동기, 이전 학교에서의 전공에 대해 물었고, 질문은 대체로 평이했다. 그리고 면접이 막바지로 접어들 즈음 한 면접관이 물었다.



"미술사와 관련된 책은 어떤 걸 읽어 봤나요?"


순간 머릿속이 번뜩이는 것 같았다. 언니가 빌려다 준 두 권의 책. 그중에서도 한눈에 봐도 개론서구나 싶은 두꺼운 책의 이름이 떠올랐다.


'한국 회화사 연구'


책의 이름을 말하자 이번엔 질문했던 면접관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바로 다음 질문이 날아들었다.


"어느 교수님 책이었죠?"


아차 싶었다. 두 눈을 살짝 위로 향한 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마 무시한 두께의 책을 받아 들고 제일 먼저 펼쳤던 책날개에 있던 이름. 불현듯 그 세 글자가 뇌리를 스쳤다.


내 대답을 들은 면접관의 날이 서 있던 눈빛이 순간 온화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잔뜩 긴장한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어려운 책을 읽었네요."


휴우, 고비는 넘겼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시 질문이 날아들었다.



"동양 미술과 서양 미술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공 지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탑재하지 못한 당시의 나에게는 단어 그대로 '멘털붕괴'를 일으키는 질문이었다. 애초에 합격하면 3학년으로 시작하는 시험에서 전공 관련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안일하게 준비할 게 아니었구나, 싶은 순간 다시 머리를 굴렸다.


언젠가 보았던 동양화 한 점과 서양화 한 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둘의 차이점이 뭘까, 생각했다.


"동양 미술은 정적이고, 서양 미술은 동적인 것 같습니다. 동양 미술은 먹을 쓰기 때문에 흑백의 대비가 주를 이루고, 서양 미술은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색채가 다양하고 동세가 강하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공자가 된 지금은 100퍼센트 동의할 수 없는 답변이지만 그것이 당시 비전공자였던 내 머릿속으로 짜낼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리고 타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던 2월의 마지막 로부터 2년이 흐른 뒤, 나는 휴학 원서가 들려있던 손에 자퇴 원서를 들고 마지막으로 학교로 향했다. 그날도 처음 왔던 날처럼 눈이 허리까지 쌓여 있었고, 나는 아무도 없는 동아리방에 작별편지를 남겨놓은 채 빠져나왔다.


이제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공부를 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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