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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Dec 01. 2024

순수와 순진

순수 純粹  

1.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2.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순진 純眞 

1.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함.

2.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두 단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비슷한 듯하지만, 의미에서 꽤 큰 차이를 보인다. 순수는 개인적인 마음에 관한 것이고, 순진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어린이들을 볼 때, 순수하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 이유는 욕망에 물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경우, 욕구는 있지만 욕심의 크기는 작다.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것과 자는 것이 채워지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작은 일에도 즐거워한다.      

이렇게 어린이로 살아가다가 사춘기의 청소년이 되면, 슬슬 욕망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먹을 수 있는 식욕의 한계 이상으로 가지고 싶어 하는 탐욕이 자라게 되고, 성 에너지가 만들어져서 성욕이 왕성해져서 쉽게 분노에 휩싸인다. 또한, ‘나’라고 하는 의식이 만들어져서 자아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인 수면욕이 강해져서 어리석은 상태가 된다. 이렇게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휩싸여서 순수했던 자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만들어지는 이런 세 가지의 욕망은 본능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욕심은 다르다. 욕심은 욕망을 이룬 뒤에도 계속된다. 그래서 욕심이 많다는 것은, 미래에 있을 욕망의 실현에 대한 관념적인 추구와 실행, 그리고 집착이다. 그래서 결코 채워지지 않을 욕망에 허덕이는 상태를 목마름에 비유해서 갈애(渴愛)라고 한다.

     

우리가 보통 순진하다고 할 때, 세상의 때가 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혹은 세상의 방식에 밝지 않고, 세상에 대해 자신의 방식을 순수하게 유지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순진은 마음을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순진하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법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진하다는 것의 반대로 자주 쓰이는 말이 ‘닳고 닳았다’라는 표현을 한다.    

    



세상을 살아 나가다 보면, 순수하진 않지만 순진한 사람도 있고,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사람도 있고, 순수하면서 순진한 사람도 있고, 순수하긴 해도 순진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순수하면서 순진한 사람은 세상에서 살 수가 없다. 살아있다고 해도 제 정신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어렵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더러운데, 세상이 더러운 줄도 모르고, 더러움 속에서 살 줄도 모르는 것이다. 이들은 늘 세상과 부딪히다가 상처 입고 버려지고 소모된다. 때론 보통 사람 감정의 배설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늘 자신의 양심에 상처받는다.  


순수하지 않지만 순진한 사람은 오래지 않아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사람이 된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는 것일 뿐, 금세 욕망에 물들어 순수하지도 않고 순진하지도 않은 사람이 된다.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사람은 대부분의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적당히 닳고 적당히 순수하다. 때론 닳아있고 때론 순수하다. 때론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만, 이익과 욕망 앞에서 양심을 서슴없이 버린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삶이다.     

 

순수하지만, 순진하지 않은 사람은 하늘의 별만큼 드물다. 이들은 세상을 오해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느낀다. 그렇게 세상의 방식에 맞춰 살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은 욕망을 가진 보통 사람보다 강하고 굳세다. 이들은 개인적인 욕망보다는 세상 공동의 가치를 추구한다. 그것이 허망한 이상에 불과하더라도, 그들의 한 발짝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려고 하는 것이다. 간혹 역사에서 이런 사람들이 반짝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세상이 변하고, 영웅이 탄생한다. 


하지만 대부분 세상은 보통 사람들의 세상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누구도 개인 삶의 방식을 강요할 수 없다.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린 삶도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을 선택하면 된다. 바로 그 ‘인간다운’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의해 자신이 속하는 부류가 정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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