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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May 26. 2024

도전과 멈춤

공연을 시작하는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첫 곡의 인트로 부분을 연주하는데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바로 뒤에 위치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굉음처럼 웅웅 거리고, 기타 소리와 건반 소리는 전혀 들리기 않았다. 첫 음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간신히 첫 소절을 시작했으나 음이나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어려웠다. 제대로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게 혼미한 상태에서 첫 곡이 끝났다. 그 순간 그만둬야 하는지 아니면 그래도 계속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밴드 활동을 시작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를 도중에 멈추거나 공연을 중간에 그만두면 절대 안 된다고 배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노래는 끝까지 불러야 하고 그만두고 싶어도 공연은 스스로 마무리해야 다음에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을 해서 차츰 좋아질 거라 다독이며 우리 팀 소개를 했다. “저희 이음밴드는 음악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의미를 가진 밴드로, 보컬 1명, 건반 1명, 통기타 1명으로 이루어진 3인조 어쿠스틱 밴드입니다.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 취미활동으로 음악을 하다가 밴드를 결성하여 공연까지 하게 된 팀입니다. 오늘은 사정상 한 명이 참여를 하지 못해 두 명이 공연을 하겠습니다. 버스킹은 오늘 처음 도전하는 만큼 긴장하고 있으니 많은 응원과 박수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곡을 불렀다. 첫 곡을 망쳤다는 생각에 더 긴장되어 떨리면서 손이 곱아가기 시작했다. 기타를 치기 어려워졌다. 코드와 가사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곡이 끝나자 이제는 정말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수준의 공연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대 앞으로 여기저기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분들의 얼굴을 하나 둘 천천히 살펴보았다. 바로 앞에 있는 얼굴을 마주하듯 표정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런 걸 노래라고 하나 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아예 다른 곳을 보거나 핸드폰만 보는 사람들도 보였다. 부끄러움에 막 일어서려는 데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쳐 주는 모습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계속하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분들이 있었다.


엉거주춤한 상태로 잠시 고민을 하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바짝 긴장하여 어떻게 불렀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마지막 곡까지 모두 마쳤다. 손뼉 치고 웃어주며 끝까지 앉아 있던 한 분 한 분의 모습들을 사진 찍듯 선명하게 가슴에 담았다. “사실 두 번째 곡이 끝나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아니었으면 끝까지 마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리를 지켜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팀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왔다. 부끄러움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응원을 하려고 찾아왔던 친구와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 하는 것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도 하고, 그래도 도전한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하며 위로를 해 주었다.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50이 넘어서 처음 통기타를 잡았다. 김광석 님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 기타를 배워 꼭 불러보고 싶었다. 그 후 기타를 구입하고 시간 될 때 조금씩 배우며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밴드를 구성하여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하며 가끔 작은 공연을 하기도 했다. 퇴직을 하고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면서 버스킹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해체가 되었던 이음밴드 멤버들에게 버스킹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멤버 중 한 명이 망설이며 쉽지 않다고 했다. 말이 버스킹이지 전문가들이 덤비는 것이고 일반인이 하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했다. 버스킹은 실외에서 하는 부담도 있고 음향시설도 좋지 않아서 아마추어가 무작정 하다 가는 창피만 당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특히 우리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도 했다. 일단 수긍이 가는 말이었으나 꼭 해보고 싶은 욕심에 덕진공원에서 열리는 버스킹에 참가 신청을 했다. 멤버의 말에 자극이 되어 2주일 동안 하루 2-3시간 정도 노래와 연주 연습을 했다. 목이 아프고 쉬기를 반복하면서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름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공연을 마치고 일주일이 지나 멤버들을 만나 피드백을 했다. 버스킹은 무대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큰 실수였다. 사전에 음향시설의 위치나 상태를 체크하여 연주자의 위치나 멤버와의 거리와 위치를 체크하여야 했다. 바닥도 울퉁불퉁하니까 악보대가 바람에 넘어질 수 있다는 점도 대비하여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노래와 연주가 버스킹을 할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남 앞에 선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되새겨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당시의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도전만이 능사는 아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것은 매달리기 보다 빨리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버스킹이 도전과 멈춤의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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