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재영 Jul 04. 2024

한 학기를 마치며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채점을 한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한 학기를 어떻게 진행할까 걱정도 되고 부담도 컸는데 한 주 한 주 열심히 준비하고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종강이 다가왔다. 시간이 일주일 단위로 흘러갔다. 모든 일정이나 계획이 수업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대학 과정의 한 학기가 15주라는 사실도 학창 시절에는 모르다가 이제야 알았다. 능동자와 수동자의 차이를 실감했다.


평소 가장 많이 들었던 직업은 선생님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나의 직업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거나 믿고 있었다. 이미지가 옛날 훈장 선생님이나 초중고 선생님 같다고 했다. 왜 그런 이미지가 형성되었는지는 모르나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선생님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많이 했었다. 덕분에 잠재의식 속에서 선생님처럼 온유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려는 행동을 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꿈꾸어 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부강사를 선발한다는 공고에 가장 먼저 지원을 했다. 이전까지는 외부강사로만 교육을 진행하다 처음으로 내부강사 선발을 시도하는 것이라 회사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 서류 선발 후에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강의에 필요한 기초적인 스킬을 알려주는 교육이 진행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수사관들과 법무연수원에서 3박 4일 동안 교육을 받았다. 그 후 역량강화 과정까지 수료하고 실전에 투입되었다. 신규 수사관이나 승진 수사관을 대상으로 수사실무에 대한 강의를 했다. 당시에는 내부강사 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아 전임이 아닌 특강 형식으로 참여를 했다. 후속으로 개설된 특별사법경찰관 강사 모집에도 참여하여 특사경 강사로도 활동을 했다. 이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현실로 실행하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지방에서는 강사 활동을 하는 수사관이 거의 없던 실정이라 조언을 구하는 몇몇 후배들을 인도하여 강사의 길을 걷게 한 경우도 있었다.


퇴직을 하고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이 청소년 멘토링이었다. 인생나눔교실에서 멘토로 활동하며 초등. 중등.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청소년을 만났다. 지금껏 경험한 인생을 성심성의껏 알려주려 노력했다. 그 후 글쓰기 강사, 선거관리위원회 초빙강사, 법 생활 관련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W대학에서 경찰행정학 교수를 선발하는 공고가 났다. 드디어 선생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첨부 서류를 꼼꼼히 준비하여 임용지원서를 제출했다. 겸임교수로 채용이 되었다. 직업이 선생님 아니냐는 말을 평생 듣고 살더니 결국 선생님이 된 것이다. 기분이 묘하면서 엄청 기뻤다. 딱 거기까지 좋았다.


학기 개강이 되자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다. 선생님에서 한순간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1학기 과목은 경찰수사론을 강의했다. 수사는 30년을 종사하였던 분야라서 실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이론이었다. 그간 형사소송법이 대대적으로 개정이 되었고, 이에 따라 수사준칙과 범죄수사규칙, 경찰수사규칙이 개정되었다. 수사환경도 피의자의 인권보호 측면에서 많은 변화 하였고, 수사절차도 디지털의 발전에 따라 전문적으로 세분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따라가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


수업계획서에 따라 매주 수업준비를 하고 강의를 진행했다. 수업이야 준비를 철저히 하면 되지만 체력은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것이 아니어서 3시간 연강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지만 3시간을 서서 떠들다 집에 오면 피로가 밀려오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이름과 성향도 알게 되고, 강의가 점점 몸에 익숙해지면서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뉴스에 난 기사를 가지고 압수수색영장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수사 절차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찾아 같이 읽으면서 학생들과 논점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책으로만 접하는 수사를 현장에서 실용되는 수사와 접목시켜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론에 더해 실무에서 사용하는 판례 보는 법, 양식 기재하는 법, 조서 작성하는 법을 직접 실습도 해보았다.


대학생활에서 원픽을 꼽으라면 단연 수업 전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다. 수업시간보다 여유롭게 도착하여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교정의 생기 발랄함을 느끼며 당일 수업에 대해 정리하고 있으면 그 자체로 행복했다.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할까, 오늘은 무슨 말을 나눌까, 한 가지라도 배움이 있는 시간이 되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진짜 선생님이 되어 갔다.


어려움도 많았다. 요즘 아이들의 성향을 몰라 당황해하기도 하고 서운해하기도 하며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심정도 있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생각지도 않고 좀 더 열심히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곤 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늘구멍과 같은 취업 전선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는 학생들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들을 전체가 아닌 한 명 한 명 개인으로 바라보면서 개개인의 성품과 특징을 살펴보게 되었다. 수강생이 아닌 인생 후배로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강의도 잠시 휴지기를 갖고 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유를 가지며 2학기에는 어떤 내용으로 함께 할까 고민 중이다. 조만간 강의 준비도 시작해야 한다. 이제 어느 정도 학교 시스템도 알게 되고, 학생들과의 소통도 잘할 수 있는 경험이 생겼다. 다음 학기에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만의 교수법으로 진행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초보 병아리 선생이 과욕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가도, 학생들을 위한 거라면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괜찮은 것 아니냐며 위안을 해본다. 2학기 개강이 기다려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