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재영 Jul 06. 2024

삶에 루틴이 생기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곳이 있다. 아파트 헬스장이다. 10년 전 중인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운동할 길이 막혔다. 도심에 있을 때만 해도 띄엄띄엄이지만 헬스장을 찾아 운동하곤 하였는데 변두리로 오니 헬스장이 없어 그마저도 하기 어려워졌다. 인근에 완산 체련공원이 있어 저녁 식사 후에 산책 겸 걷기는 할 수는 있었지만, 근력 운동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헬스장을 다니기 위해 시내까지 나갈 수도 없어 동네 구석구석을 걷거나 체련공원 둘레를 걸으며 건강을 지키려 노력했다.


  여느 때와 같이 식사하고 아내와 함께 동네 마실을 나왔다. 평소 원주민이 거주하는 마을 길만 걸었는데, 그날은 옆에 있는 아파트로 방향을 잡았다. 이 아파트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중인동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도시가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었는데 아파트가 건축되면서 도시가스가 들어왔다.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고 할 때만 해도 동네까지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해 연말까지 도시가스관 공사를 한다고 하여 대지를 구입하였다. 아파트가 없었으면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이곳에 집을 지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적한 시골에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편의점도 생기고 가로수도 밝아지고 각종 생활시설이 들어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 초입에 들어서는데 왼편으로 유난히 환한 불빛이 비치는 단층 건물이 보였다. 건물 통창 안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궁금하여 가까이 가보니 헬스 기구를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 헬스장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설 헬스장 같지는 않고 아파트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이런 곳에서 헬스장을 만나다니 매우 놀랐다.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주민을 붙잡고 어떻게 이용하는지 물어보니 관리사무실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관리사무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주민들이 연회비를 내고 이용하는데 동네 이웃에게도 개방하여 연회비를 내면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며 즉시 등록했다. 회비도 저렴하여 거의 무료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이웃 주민들을 위해 이런 배려를 해 준 아파트 주민들에게 감사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헬스장으로 향한다. 일반 헬스장처럼 기구가 많거나 최신 장비는 아니지만 운동하기에는 부족함이 전혀 없다. 첫날 헬스장에 들어서니 헬스장 자치운영 회장님과 총무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회원분들도 새로 온 회원이 어색하지 않도록 인사도 해주고 말도 걸어 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헬스장과의 인연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제주살이 1년 6개월이 지나 다시 헬스장을 찾았을 때도 어제 본 사람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다. 이용 회원의 연령층은 10대부터 80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운동 패턴이나 기구 사용 매너, 사고의 차이로 세대 간 불편함이나 갈등이 있을 수 있으나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헬스장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운동 시간도 각자 자신에 맞는 시간대가 있어 같은 시간대에 가면 같은 회원들을 만나게 되어 친근함이 깊다. 바쁜 일정에 며칠이라도 빠졌다가 가면 “왜 이리 안 나왔냐?”, “어디 여행이라고 갔다 왔냐?”며 한동안 시끌벅적하다. 헬스장의 나이만큼 다정하고 가까운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운동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을 좋아한다. 운동을 해도 여럿이 하는 구기 종목이나 몸으로 하는 격투기는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해 피하곤 한다. 굳이 운동이라고 꼽자면 탁구, 골프,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가끔 하고, 주로 걷기와 등산을 하며 지내왔다. 운동을 싫어해도 건강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인 것 같다. 운동은 하기 싫어하면서도 헬스장은 다니려고 노력했었다. 시내에 거주할 때도 헬스장 등록은 꾸준히 하였다. 직장생활을 핑계로 빠지는 날이 더 많았지만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건강이 담보된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퇴직하고 헬스장을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모임이나 회식이 줄어들면서 저녁 시간이 여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식사 후에 헬스장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먼저 사이클을 30분 정도 타며 헬스장에 켜져 있는 뉴스로 하루 일상을 스케치한다. 다음으로 거울을 보며 머리와 목 운동을 한다. 예전에 목 디스크 증상이 있어서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근력운동이 필요하다고 하여 기구를 이용한 렛풀다운 운동, 레그익스텐션 운동, 척추기립근 운동을 순서대로 3세트씩 한다. 정리 운동으로 러닝머신 위를 20분 정도 걷고 거꾸리 운동기구로 마무리한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운동하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나면 부러울 게 없다.


  헬스장을 찾는 이유는 건강 유지도 있지만 한 가지 더 있다. 나이가 들면서 잠이 없어졌다. 아예 못 자는 편은 아니지만 숙면을 하는 경우가 적어지고 있다. 운동을 하고 잠자리에 들면 바로 잠이 들기도 하고 중간에 잘 깨지도 않아 아침이 상쾌하다. 꿀잠의 맛을 보고 나서는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어 헬스장에 꼭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피곤하거나 귀찮아서 가기 싫은 날도 많다. 그럴 때면 운동을 마치고 헬스장을 나와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을 상상하며 무거운 발을 옮기기도 한다. 자전거 바퀴를 처음 돌릴 때는 힘이 많이 들지만 점점 속도가 붙으면 적은 힘으로도 손쉽게 앞으로 나아간다. 헬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습관이 되면서 이제 일상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았다.


  꾸준히 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데 왜 헬스장만은 이리 오래 다니고 있을까? 운동만이 목적이었으면 중간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헬스장에는 운동기구 외에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안 가면 걱정할 것 같고, 안 보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헬스장에는 사랑과 정이 있다. 나를 지탱해 주는 삶의 루틴이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학기를 마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