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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공간 Aug 08. 2019

시작하려면 시작하라

제주도에 내 식당 창업하기 Ep.6









“너의 첫 업무는 말이야….”

출근하고 첫 업무를 받았을 때 귀를 의심했다. 아니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의 첫 업무는 ‘블로그에 요리에 관련한 포스팅을 올리는 것’과 회사 업무를 배우는 것, 다른 회사로 납품을 하기 위한 배달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공연, 문화 관련 행사를 함께 하는 작은 출판사였다. 실질적으로 일이라고 할만한 것은 배달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 시간에 회사 업무를 배우는 것도 감사할 일인데 요리를 블로그에 올리라니 지금까지 해 온 일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사장님은 직원의 개인역량을 키우는 것부터가 회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셨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뜬 기분이었다. 정말 잘 왔구나, 제주도에!






처음에는 집에 남은 재료들을 활용해서 요리를 했다. 요리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진을 정리해서 글을 쓰려고 하다보면 놓친 과정들이 많았다. ‘아까 그 장면을 찍을 껄’, ‘다른 각도에서 찍어볼걸’ 하는 생각에 아쉬웠다. 세상 정말 쉬운 일 없다는 걸 블로그를 하면서 많이 깨달았다. 요리 블로거를 하는 분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그래도 블로그를 올리는 날에는 잠자리가 편안했다.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기도 했고 뭔가 발전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고등학생때부터 일기를 쓸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남에게 보여주는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달랐다. 성취감이 주는 만족의 기쁨도 알게 되는 하루하루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포스팅을 하다보니 점점 욕심이 생겼다. 포스팅만을 위해 식재료를 구매하고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회사에서 맡게 되는 일도 점점 늘어났다. 출판사인데 문화행사를 진행하기도 했고, 작가님을 모시는 운전기사 역할도 했다. 무대 보조를 하면서 서포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회사가 나의 발전을 위해 신경써준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업무도 내 일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나 역시 사업을 한다면 직원의 자기계발에도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당을 차리는 데에는 요리하는 실력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회사 생활에서 배웠다. 사업이라는 건 다방면에서 접근해야 했다. 아마 바로 식당을 차렸다면 이 많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요리 포스팅이 늘어나면서 업무시간에 식재료 탐험을 해도 좋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렇게 좋을 수가! 제주 오일장과 동문시장이 나의 주 활동장소였다. 끝자리가 2, 7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제주도의 민속오일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게 큰 시장이다. 경매를 통해 구매한 채소와 텃밭에서 채취해온 채소가 펼쳐져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식재료도 많았다. 제주도에서만 나는 식물이나 어류가 있다고 했다.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곤 했다.


회사에서는 요리와 접목한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많이 늘어났다. 첫 임무는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작가님이 제주도의 식자재를 활용한 글을 쓰면 내가 관련된 메뉴를 만들어 시연을 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있는 메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많이 배웠다. 새로운 식자재를 알게 되기도 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첫 메뉴 영귤이었다. 영귤은 낯선 식자재였고 영귤을 이용해 잼과 정과를 만드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여러번 시도 끝에 괜찮은 비율을 찾아 레시피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다. 성장하는 기분이 주는 쾌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짜릿했다. 해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우도를 찾아가기도 했고, 멋진 음식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가를 만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갓잡은 해산물을 먹어보는 영광도 누렸다. 이런 경험이 식재료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놓았다.


배우는 게 많아질수록 궁금한 점도 늘어갔다. 제주도에서 나는 식자재를 잘 활용하기 위해 먼저 제주도에서는 어떻게 그 식자재들을 활용했는지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식자재 유통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주도 향토요리를 배우는 곳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제주도 제 1호 식품명인 김지순 명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회사의 배려로 바로 등록했다. 잘 한 일이었다. 식문화를 공부하면서 제주도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는 남쪽에 위치한 섬이다보니 육지와 기후도 달랐고, 화산섬이라 토양도 달랐다. 해류도 달라서 잡히는 생선의 종류도 다르다. 겨울에도 배추를 재배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했기 때문에 김장문화도 없었고, 장 역시 바로 담아 먹었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채소는 소중한 자산이었기에 음식을 남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콩죽, 우럭콩조림 등 제주도의 향토요리는 조리법이 간단한 만큼 식재료 신선도가 그 맛을 좌우했다. 끼니때 마다 텃밭을 이용해 먹을 만큼만 채소를 채취하고 생선도 욕심내지 않고 먹을 만큼만 잡은 건 그 이유다. 제주 음식에는 제주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제주도의 요리에 자신이 생긴다는 건 식당을 차릴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예전처럼 회사를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다. 인생에 큰 의미가 되어 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사장님은 “너의 인생이 더 중요하지!”라며 응원해주셨다. 나도 꼭 저런 사장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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