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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공간 Aug 22. 2019

나는 왜 서울에서 된장남이 되었나

청년셰프 콜라보 X 특별 게스트 작가 No.1 강정현









똑똑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 너머로 배달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짜장면 배달 왔습니다!' 오늘 저녁도 배달 음식이다. 하루는 중국집, 하루는 치킨집, 하루는 분식집…. 타지 생활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배달 음식에 익숙해지는 시간이다.





출처 : 배달의 민족


식당의 조리사들이 정성스레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음식들이 밥상 위에 펼쳐짐과 동시에 가슴속에는 허전함과 쓸쓸함이 차오른다. 기계적으로 짜장면을 비비면서 탕수육과 군만두의 비닐 포장을 벗긴다. 마지막 순서로 식사를 함께 할 먹방 채널을 찾는다. 그들의 속도에 맞춰 식사를 하다 보면 타지의 외로움이 조금을 달래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의 먹방은 된장찌개다. 덕분에 고향 생각이 났다. 20년 넘게 백반집을 하신 어머니의 가게에는 늘 손님이 가득했다. 배가 고플 때면 그 바쁜 가게에 찾아가서 밥을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럴 때면 가장 빠르게 줄 수 있는 메뉴가 된장찌개였고, 나는 늘 된장찌개와 함께 밥을 먹었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간다며 휴학을 했다. 서울 인근에 위치한 경기도 오산에 취업했는데, 이렇게 절묘할 수가! 서울에 대한 환상은 그야말로 오산이었다. 늘 외로웠고 궁핍했다. 메뉴에 대한 고민이라곤 어떤 라면을 먹을까 정도가 전부였다. 그날도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오랜만에 짜장 라면을 끓였다. 늑장을 부렸는지 겨우 두 입 정도 먹었는데 출근 버스가 올 시간이 되었다. 라면 그릇에 뚜껑을 덮고 그대로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침에 남기고 간 짜장라면이 그대로 있었다. 내가 치우지 않으면 누구도 치워주지 않는 자취생의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뚜껑을 열어보니 살짝 쉰 냄새가 난다. 버릴까 하다가 통장에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곰팡이가 핀 것도 아닌데 뭘!’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달랜다. 김치와 함께 먹으니 먹을 만했다.


저녁이 되자 구르륵 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한 숨도 못 자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탈진해서 자리에 누웠다. 뱃속이 진정되자 이번엔 눈이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어머니에게 전화하면 놀랄 것 같고, 친구들에게 말하자니 창피했다. 난데없이 된장찌개 생각이 났다.





 

고향에 갈 때면 집보다 엄마의 식당으로 먼저 갔다. 엄마는 “오자마자 밥타령이라니 내가 네 식모냐?”라고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으시면서도 금세 된장찌개 한 뚝배기를 끓여 주셨다. 화면 속 된장찌개를 보니 그때의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


시커먼 뚝배기 안에 두부, 호박, 파, 청양고추가 보글보글 끓는다. 보글보글한 공기방울이 춤추듯 튀어 올랐다가 다시 들어간다. 뚝배기 옆으로 국물이 흐르는 모습이 마치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아직 끓고 있는 뚝배기를 후후 불며 수저로 휘저으면 요동치던 된장찌개가 한순간 진정된다. 수저를 깊숙이 뚝배기에 처박은 뒤 들어 올려야 밑에 가라앉은 된장 콩들과 건더기를 양껏 건져 올릴 수 있다.


두부는 조금 기다렸다가 먹어야 입천장을 지킬 수 있다. BJ는 뜨거운 밥 한 숟가락에 뜨거운 된장찌개 한 입을 먹는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아마도 입안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뱉을 수는 없고 그냥 삼킬 수도 없는 뜨거움이 입 안 가득 퍼졌을 테니까.




출처 : Pixabay


이때 이 뜨거움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이 김치다. 단무지를 하나 집어 올리며 빨갛게 잘 익은 김장김치의 청량하고 시큼하고 달달한 맛을 떠올린다. 20년 백반집 경력을 자랑하는 어머니의 요리는 다 맛있지만 그중에서도 김치는 동급 최강이다. 음식 맛은 김치가 결정한다며 손수 허리가 끊어지게 김장을 담그신 덕분에 식당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1년에 2천 포기가 넘게 김장을 담그실 때도 있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 친구뿐 아니라 나와 내 친구들까지 동원된다. 자기가 맡은 구역에서 있는 힘을 다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전쟁과 같은 노동에 지칠 때쯤 어디선가 수육 냄새가 올라온다. 배추에서 떨어진 배춧잎들은 된장국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한편에 모아둔다. 고춧가루 냄새와 양념 냄새, 수육 냄새, 된장국 냄새가 진동을 하면 자 이제 준비가 됐다. 굴을 대령하라!


잘 절여진 배춧잎을 하나 따서 양념을 슥슥 무친 후 양념 건더기를 올린다. 그리고 적당한 기름이 붙어있는 수육 한 점을 올리고 11월 제철을 맞은 통통한 굴 하나를 올려 입으로 직행! 세상 이보다 완벽한 삼합이 있을까? 갓 절인 배추와 수육, 굴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 자칫 매울 수 있는 김치는 수육의 기름이 잡아주고 느끼할 수 있는 수육은 굴의 시원한 맛이 잡아준다. 이 조합은 치킨에 맥주, 피자에 콜라, 삼겹살에 소주보다 위대하다.





배춧잎을 가득 담아 시원한 맛이 일품인 된장국 한 모금을 마시면 입 안은 다시 초기화된다. 다시 잘 절여진 배춧잎을 하나 따서 양념을 슥슥 무친 후 다시 시작이다. 그렇게 연신 먹다 보면 ‘그만 먹고 일해!’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렸었지. 된장국의 뜨거움을 호소하는 BJ의 호들갑 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내 숟가락 위에는 된장찌개가 아닌 냉동 해산물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짬뽕 국물이 있을 뿐이다.


내일은 배달음식 대신 지난가을에 담은 김장김치를 오랜만에 꺼내서 대가리만 툭 자르고 두부와 호박을 가득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볼까. 청양고추를 넣으면 칼칼함까지 더할 수 있다. 흰쌀밥에 된장찌개만 있어도 그 어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을 테다. 오랜만에 요리를 할 생각을 하니 혼자 먹기 아쉽다. 휴대폰 연락처를 하나하나 둘러본다. 나처럼 먹방과 배달음식이 함께 하고 있을 녀석들의 이름이 보인다. ‘내일 저녁 같이 먹을래?’라고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대답이 온다. ‘콜’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느새 짜장면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바람도 쐴 겸 집 앞 시장을 둘러봐야겠다. 호박이랑 두부만 사면 되려나? 맛있는 김치가 있는데, 수육은 못해도 삼겹살은 구워야 하는 것 아닐까? 굴이 없어도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이 함께 하면 이게 바로 자취생의 삼합이다. 집밥의 힘이다.







강정현

내식당창업프로젝트 3기에서 함께 청년셰프를 했습니다.

동문시장 청년몰에서 오픈을 준비중입니다.

오시면 언제나 고봉으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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