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과 동시에 준비하기 시작했던 그 이벤트
2017년 10월. 약 4년 간 해온 공노비 생활을 청산하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입사했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타트업을 비롯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많은 구성원들과 마주하며 일했고 많이 배웠다. 사실 내 역량에 비해 과분한 기회를 많이 얻었고, 그 기회가 과분하다는 걸 알아서 나름대로 치열했고, 그래서 나 스스로를 많이 깎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2019년 3월, 딥 테크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 파트너스로 이직했다. 그간의 이직과 블루포인트로의 또 한 번의 이직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쓸 일이 있을 것 같다.
그렇게 3월, 이직하자마자 준비하기 시작한 블루포인트 데모데이가 4월 24일 진행됐고, 잘 마무리됐다. 스얼에서 일하면서 크고 작은 많은 행사를 했지만, 그전에 연구원에서도, 국회에서도 많은 행사를 했지만. 그럼에도 공연 보러나 와봤던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을 통째로 대관해 천 명 규모의 행사를 치러본 것은 처음이었다.
더욱이 후속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는 우리의 포트폴리오사를 투자자들, 그리고 테크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대중 앞에 보여주는 일이라, 내 새끼 데뷔시키려고 열심히 투표하던 국민 프로듀서 시절 같은 전전긍긍, 그리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일이었다. 내 새끼가 얼마나 잘 났고, 실력이 있는지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었던 그때 그 국민 프로듀서 시절처럼. (... 그 이후로 프로듀스 101과 뜨겁게 이별했다고 생각했는데, 새 시즌이 시작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네. 저스트 비 조이풀.. 상균아 잘 지내지...)
데모데이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행사다. 이 자리에서 다음 단계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를 액셀러레이터에서 받은 후 성과와 앞으로의 성과 계획 등 청사진을 보여주고 기회를 찾는다.
요즘은 대기업 같은 큰 조직에서도 스타트업과의 협업, 혹은 스타트업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 혹은 대기업 내부의 투자 조직에서 스타트업에의 전략적 투자 등을 목적으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데모데이는 그런 이들을 대상으로 프로덕트와 서비스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블루포인트 데모데이는, 우리 블루포인트 파트너스 입장에서도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창업이라는 어려운 여정, 특히 '기술 창업'이라는 분야에서 우리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팀들을 아주 초기에 만나 맞는 시장을 함께 찾고, 방향을 잡고, 다듬으며 성장을 돕는다.
기술 창업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나오는 국내 상황에서, 블루포인트는 공학의 여러 분야, 바이오 의약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전문성을 살려 밀착 지원한다. 즉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대중 앞의 '데뷔' 같은 순간이지만, 우리의 액셀러레이팅에 대해서도 보여주는 우리의 '발표회'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스타트업들과 우리에게 모두, 스타트업으로서는 자신들의 프로덕트와 서비스를, 우리는 우리의 액셀러레이팅을 알리는 자리니까, 각자 스스로의 '내 새끼'를 자랑하는 그런 시간인 것이다.
그러니 이 데모데이는, 기술 창업이 어렵다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반나절만에 유망한 기술 스타트업을 열 팀 이상 볼 수 있는, 보여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스얼에서 행사를 할 때도 늘 생각했던 부분은, '행사 기획'이라는 것 자체의 의미였다. 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하면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행사 기획을 '어젠다 세팅',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 전달'이라고 정의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대중 앞에, 미디어 앞에 우리가 보여주길 원하는 그림과 메시지를 먼저 그리고, 그에 맞춰서 기획을 하면 기획의 짜임새도 나아질뿐더러 준비해 가는 과정에서 내부에서 공유할 기준이 명확해진다.
이번 블루포인트 데모데이의 타이틀은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 The new world of discovery, invention and innovation'. 테크 스타트업들을 통해 다가올 미래, 아직 만나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이 자리에서 먼저 만난다는 의미, 그리고 지난해에 투자한 포트폴리오 중 열 팀을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술/제조업 혁신을 위한 기술/밀레니얼을 위한 기술/미래를 위한 기술'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네 개 세션, 2부에 나눠 소개했다.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인 불가사리를 이용해 자동차의 부식도 막는 친환경 제설제를 개발한 스타스테크, 의료인력을 주사 바늘 자상 사고와 이에 따른 감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주사기 자동처리 시스템을 개발한 뮨, 미세먼지와 자연 유해 물질을 차단할 수 있는 전도성 알루미늄 필터를 개발한 알링크.
산업 현장의 유해 물질 누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그래핀 센서를 개발한 지프코리아, 발열 투명 전극을 통해 자동차나 유리의 성에와 김서림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아이테드.
나도 모바일에 굉장히 친숙하고 의존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우리 세대보다 더하다는 밀레니얼들을 위한 온라인 행잉아웃 서비스 웨이브, AI 가상 시뮬레이션 메신저 피카,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뉴스 앱 뉴스픽.
다크웹에서의 범죄, 암호화폐 거래 등 분석하기 위한 데이터 분석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S2W Lab, 고성능 로켓 엔진을 사용해 초소형 상업위성 발사체를 만드는 페리지항공우주. 이상 열 팀이 이번 데모데이에서 약 1천 명에 가까운 대중 앞에 다가올 미래를 소개한 블루포인트 파트너스의 패밀리, 포트폴리오 기업들이다.
개인적으로야 당연히 블루포인트에 와서 처음 한 데모데이이자 큰 행사라 나 스스로에게 아쉬웠던 점들은 당연히 많았다. 개인적인 스스로에 대한 평이니까 이건 내 일기장에만 남겨야겠지만. 덕분에 입사하자마자 두 달 동안 열 팀의 포트폴리오사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점에선 감사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를 많이 얻었다.
다행히 운영상의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쳤던 이번 데모데이, 그리고 많은 분들이 좋은 피드백을 남겨주셨고, 무대에 선 팀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들을 보여주셨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데모데이의 주인공은 늘 액셀러레이터가 아니라 피칭하는 스타트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내가 청중으로 참석해왔던 이전의 블루포인트 데모데이도, 내가 주최 측이 되어 준비한 이번 데모데이도 본질에 충실해서 가장 감격스럽고.
그리고 어떤 행사든, 단 하나도 주최측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그렇게 배워왔고, 할 때마다 더 느끼기에, 우리 블루포인트 식구들과 함께 호흡하며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이 아니었다면, 또 그 좋은 봄날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을 가득 채워주신 청중 분들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결과물이라 마음 가득 감사함을 안고 있다.
다음 데모데이는 봄보다 더 깊이 푸를 가을에 열릴 예정이다. 또 어마 무시하게 멋진 팀들을, 더 멋지게 소개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이제의 내 숙제고 블루포인트의 숙제일 것이다. 모든 첫사랑이 정신없고 서툴지만 그만큼 강렬한 것처럼 이번 데모데이가 나에게 그랬다면, 다음 데모데이는 내게 조금 더 성숙하고, 덜 서툴고, 그러면서도 또 새로운 설렘이 되기를. 나는 그런 기대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블루포인트는 데모데이 이후에 포트폴리오 사의 후속 투자를 위해 VC만을 초청하는 비공개 인베스터 데이를 진행한다. 올해는 데모데이 6일 후인 4월 30일에 인베스터 데이를 진행했다. 인베스터 데이에서도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