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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Jun 16. 2020

갑자기 분위기 바디프로필

PT를 받는 1년 동안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던 그것 

술을 어떻게 끊어요?


주당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술을 안 먹는 것도 아닌, 술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 음식을 먹을 땐 당연히 그 음식에 곁들일 술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술을 끊는다'는 건 상상하기에도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자연스러운 관심의 흐름을 따라 SNS에서도 운동과 관련한 콘텐츠를 많이 봤다. 당연히 '식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지만, 술을 먹으면 근손실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대회 나갈 것도 아니고, 사진 찍을 것도 아닌데, 먹고 마시려고 운동하는 거다, 하며 건강한 돼지를 향해 차곡 차곡 먹으며 열심히 운동했다.


잘 먹어가며 운동하니 중량이 점점 올라가는 건 당연했다.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여전히 상체의 힘은 부족하지만) 여러모로 자세나 자극점을 찾는 속도, 중량 면에서 모두 좋아졌다. 그렇게 운동을 한지 한... 7개월 쯤 됐을까. 그러면서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안 먹던 프로틴 파우더도 이즈음부터 말아먹었다. 점심 미팅이 없는 날은 샐러드나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기도 했다. 완전히 식단을 할 수는 없지만 운동을 하는 효과를 조금은 더 보고싶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웬걸, 모든 점심과 저녁 약속들이 파토나기 시작했다. 재택 근무를 하는 지인들도 많아졌다.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아지고, 술 약속도 줄어들었다. 나는 그 시간을 자연스럽게 운동으로 더 채우기 시작했다.


챌린지 따위 그저 내가 이름 붙인 것이었고, 주5일 운동하겠다는 내 스스로와의 약속을 달성해나가려고 노력한 것 뿐이다. (2월)


주5일 웨이트를 시작했다


그러고보니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PT 쌤에게 물어봐야겠다), 2월 어느날 PT쌤이 "이번 주부턴 매일 나와서 운동 하시죠" 했다. 근데 나는 또 별 생각없이 "뭐 네 그럴게요" 하고 주3회 PT때만 가던 헬스장에 매일 아침 가기 시작했다. 별 목적 의식은 없었다. 그냥 뭐 해보지 뭐. 그런 생각이었다. 


피곤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좋았다. 나는 아침 7시에 PT를 받고 출근했는데, 월수금에는 이 시간에 맞추려고 5시 30분에 일어나고, 화목에는 7시에 일어나다가 매일같이 다섯 시 반, 혹은 여섯 시에 일어나다보니 매일 아침 기상 시간은 루틴이 됐다. (원래도 아침형 인간이기는 한데,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루틴이 생긴 것이다). 정신은 더 맑아졌고 생활 리듬은 이 시간에 맞춰서 돌아가게 됐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센터는 코로나 때도 문을 닫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는 빈도가 줄었다. 매일 아침 운동하고 출근길에 프로틴 쉐이크를 마시다보니 식단도 자연스럽게 건강해졌다. 물론 칼같이 식단을 맞추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운동하는 거 이왕이면, 하는 생각에 가능하면 클린한 음식을 먹으려고 했고, 일찍 일어나야 하니 음주 비중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피티쌤의 빅픽쳐였나). 


그렇게 꾸준히 주5일 운동을 3개월 째 채워가던 4월 말 5월 초의 어느 날, "바디프로필 한번 찍어보자"는 피티쌤의 말을, 아니, 그는 이미 여러 번 말했으나 매번 내가 '아 저는 못할 것 같다' 며 넘겼던 말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고민이 길어지면 예약만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무슨 용기였는지 스튜디오를 덜컥 예약해버리고 말았다.



월요일은 1/5, 금요일은 5/5.. 이렇게 매일 매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었다. 4월 3일의 스토리. 매일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목표가 없었던 나의 모습. 


코로나 핑계대고 나도 한 번


그 말에 흔들린 데엔 사실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1분기에 진행했어야 할 일들이 조금은 미뤄졌고, 성취감이라는 게 꽤나 없는 상태였다. 매일 매일 헬스장에서 중량을 올리며 효능감은 올리지만 그때뿐이었다. 


사람마다 자신을 발전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제각각일텐데, 나는 그것에 '성취감'의 비중이 높은 사람이다. 그리고 목표를 정해놓고 완주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잘 버티는 사람이고, 목표 없는 과정에는 그 순간 순간 느껴지는 희열이나 효능감이 있어도 쉽게 익숙해져버리는 편이다. PT를 1년씩이나 받아왔는데, 주5일 씩 운동을 하는데, 운동 잘 해보겠다고 단백질까지 말아먹는데, 목표가 없다는 건 좀 이상하긴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인데,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못 만나는 것도 한 몫 했다. 점심이고 저녁이고 밥 약속 술 약속이 많은데, 그걸 다 못 하는 상황이니까 이래저래 이때 아니면 식단의 주체가 내가 되는 상황이 또 있을까 싶었다. 바디프로필을 섣불리 생각하지 못 했던 이유가 식단, 그리고 술을 못 끊을 것 같아서였는데, 사람들을 못/안 만나고 술을 조금 참는 거라면, 그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 많은 이유들 아래에 깔려있던 나의 마음은,
이렇게라도 성취감을 얻고,
코로나 때문에 상반기를 날렸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MBTI 연애성향까지 #성취감변태 라고... (요즘 왜 이거 다시 유행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러려고 운동한 건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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