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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히 Jun 17. 2021

아, 죄송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진심은 없고요 그냥 하는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오늘도 여섯 번 죄송했다.


“아, 제가 착각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중으로 제가 확인해서 전달드리겠습니다! 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복잡해서, 착각해서, 실수해서, 어려워서.

나는 여러 이유로 오늘도 죄송한 사람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적이 있다. 직업이 PD인 만큼 일주일에 많게는 3번, 적게는 1번 정도 촬영을 나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촬영 시간은 6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었고 급하게 진행해야 했다. 수습기간 3개월을 채우지도 못했던 그때. 입사 두 달 만에 겪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찍으면서도 ‘이렇게 찍어도 되나?’ 싶었다. 시간상의 문제로 한 구역을 대충 찍고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면서 이렇게 마무리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온 공기에 가득 찼다. 아직 노하우도 융통성도 없던 두 달 차 신입 PD는 결국 그 촬영을 망해버렸다. (지금도 노하우나 융통성은 없다. 그냥 그렇게 5개월 차 PD가 되었다.)


 촬영 후 다른 PD님과 함께 촬영본을 확인하며, 망했다는 느낌은 현실로 다가왔다. 그 누구도 나를 원망하거나 혼내지는 않았다. 그냥 다들 아이고.. 만 반복했다. 내 머릿속도 “아이고” 그 자체였다. 다시 찍을 수 없는 현장이었던 만큼, 그 아이고의 의미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부분은 이렇게 찍지 말고 ~~ 하게 찍어보세요.”


“네, 죄송합니다..ㅎ”


죄송하다는 말 끝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민망해서 혹은 창피해서. 아니 그보다 더 너무 죄송해서. 모든 감정이 합쳐져서 ㅎ에 담겼다. 다행히 해당 건에 대한 편집은 무사히 끝났고 별다른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입사 생활 5개월 중 가장 큰 실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일을 말한다. 그 정도로 나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았다. 민폐를 끼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며칠을 시달렸고, 멘탈 약하기로는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 사람인만큼 내 멘탈은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 뒤로도 하루에 몇 번씩, 죄송하다고 할 일이 생기곤 한다. 촬영 현장에 중요한 소품을 안 가져가기도 하고, 오늘까지 확인해 전달하기로 한 내용을 까먹기도 하고, 나에게 내려온 미션을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다.


“죄송합니다”


이제 하루라도 말하지 않으면 이상한 말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감사합니다’와 같이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한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나는 죄송하고, 내가 잘한 일에도 나는 감사하다. 처음엔 내가 왜 이렇게까지 죄송해야 하나, 내가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 맞나 하는 의문으로 하루가 가득 차기도 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며, 이제는 “죄송합니다”를 말하는 동시에 잘못한 그 상황보다는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해결했으면 됐지 뭐’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진짜 된 건가 하는 의심을 아직 떨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진짜 죄송하고 감사한 일은 생각보다 적다는 것. 나를 비롯한 모두가 ‘감사’와 ‘죄송함’을 그냥 인사치레처럼 여긴다는 것. 우리는 그냥 말하는 것이다. 아니 그냥 입에서 튀어나온다.


 “아 진짜요?” , “네~ 감사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감사하고 죄송하고 확인하고 확인을 요청한다. 나만 그럴까. 모두가 그러지. 우리는 하루 종일 그렇게 감사하고 그렇게 죄송하다.


내가 잘한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입에서는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평소같으면 벌써 억울해하며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을 법한 일에도 마찬가지다. 입에서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 사람이 되었고 그래야 뭐든 빠르게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조금 더 단순하고 흘려듣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달고 살면서도 나처럼 하루 종일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지 않는 사람. 오늘보다 내일 더 기계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특히 나처럼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게는.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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