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이기보다는 사실 아마도에 가깝다
C가 말했다.
“그건 욕심이야.”
욕심인가?
생각해보니 욕심이었다. 흔한 신입의 패기이기도 했고, 나는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이기도 했다.
입사 한 달 차. 월간 회의를 하며 다음 달의 스케줄을 정리했다. 해보고 싶은 업무가 아닌 생각해 본 적 없던 업무룰 맡게 되었다. 내가 멋대로 ‘저 다른 거 하고 싶어요’라고 할 수 없기에, 괜스레 시무룩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맡은 일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모두 하겠다고 하는 것, 그리고 모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퇴근길에 만난 C에게 말했다.
“일정이 안 맞아서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었어. 근데 내가 좀 무리하면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나 진짜 하고 싶은데”
“그건 욕심인 것 같아”
이어서 C는 그게 왜 욕심인지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애초에 하려던 일까지 잘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면 괜히 다 한다고 해서 망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그래 맞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모두 할 수 있다고 했다가 결국 무리하면서도 단 하나 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다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실망과 깨져버린 믿음이겠지.
욕심이 불러올 결과가 무서워졌다. 다른 때였으면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 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번엔 그게 현실임을 잘 알아서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C는 생각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겁이 나 버린 나를 위로하려 웃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이제 프로잖아.”
사회인이니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이고, 또 내 직급이 진짜 프로라서 웃으라고 한 말이지만 나는 어째 더욱 현실이 가깝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래 나는 프로지. 이걸로 돈을 버니까, 월급을 받으니까 욕심보다는 전체적인 결과를 중요하게 여겨야겠지.
한참을 C와 함께 직장인의 자세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진지한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를 모두 나누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잘 파악하며 일 해야겠구나. 가뜩이나 계획 짜기를 좋아하는 J형 인간인데, 앞으로 계획 짜기를 더 즐길 일만 남았다.
또 이런 대화를 오늘 나눌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내가 먼저 다 할 수 있다고 저질러 놓고 깨닫지 않아서, 내가 더 나은 결과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좋았다.
어쩌면 욕심은 화를 부를 수 있다. 아니 아마도 욕심은 화를 부를 것이다.
202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