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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히 Feb 04. 2021

여러모로 겁쟁이

이 세상 모든 것을 겁내 하는 나에게

 나는 겁쟁이다. 놀이기구도 못 타고 공포영화도 못 보고 번지점프도 못하고 비행기 이륙, 착륙도 덜덜 떤다. 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공포스러운 것들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출근을 하루 앞두고, 들뜬 마음에 여기저기 회사를 검색하고 후기를 찾아보았다. 건물 생김새, 회사 단체복, 주요 고객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파도를 타고 새벽의 나에게 밀려오는 정보들은 점점 두려움을 실어주었다. 인터넷 세상이란. 알고 싶지 않은 일들, 알아서 좋을 것 없는 일도 너무 쉽게 알려준다.




새벽까지 일 하는 게 당연하다, 회사 다니다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그만뒀다. 상사에게 잘 보이면 승진하는 거다. 일 잘하면 혼자 다 하게 된다. 이 후기를 본다면 도망쳐라. 원수가 가도 말리겠다.




어찌나 겁이 나던지. 잠은 당연히 오지 않았고 결국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나? 밤새 그 생각뿐이었다. 입사를 취소할까?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나? 온갖 바보 같은 생각을 이어가다 출근할 시간이 되어 버렸다.


지하철에서 내리며 점점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르며 숨이 차기도 했다. 머릿속에 불안한 생각만 가득한 그 시간을 마스크로 인해 숨이 차다는 생각으로 저 멀리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숨이 찬 상태로 오르막을 더 올라 회사에 도착했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평소 잘 느껴지지도 않던 심장이 너무 크게 느껴지니 기분도 이상했다. 심장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쿵쾅댔으니까. 곧이어 눈이 안 떠지고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팠다. 너무 떨려서? 너무 걱정돼서? 너무 힘들어서? 그 모든 이유로 내가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6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를 누르는 데에도 한참 걸렸다.


사무실에 들어가면서도 머릿속에는 ‘그 후기가 진짜라면 어떻게 도망쳐야 하지?’라는 생각이 가득 찼다. 입사 첫날 퇴사하면 괜찮나? 그냥 안 간다고 말하면 되나? 지금 보니 참 별생각을 다 했다. 다행히 그 생각들은 자라나기를 멈췄고, 신규 입사자 대기실에 들어서며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 말고도 8명이나 더 있는 신규 입사자들을 보며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회사를 지원해서 온 걸까, 오고 싶은 회사인 거면 좋은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를 다독이려면 그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오늘부로 출근 4일 차. 생각보다 회사가 마음에 드는 목요일이다. 월, 화, 수, 목을 보내며 느낀 건 내가 원하던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이 참 많다는 것. 상상 이상으로 참 많다는 것이다. 아직 한 시간 넘는 야근은 해본 적 없는 병아리 직장인이지만, 이 정도면 눈치로 안다.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구나..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해서인지 매일 참 재미있다고 느낀다. 회사에게 합격 목걸이를 걸어 주어도 될 것 같다. 나도 합격, 너도 합격.


 회사에는 분명 새벽 야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4일만에 일을 수월하게 진행해 다른 일을 더 맡게 되기도 했다. 나를 벌벌 떨게 만든 그 후기들이 모두 거짓말은 아니었다. 모두 사실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겪어보지 않고 두려워만 할 때보다는 마음이 참 편하다. 이 정도면 할만하지. 요즘 내가 매일 하는 생각이다. 하루의 근무 속에서 장점을 찾아내고 애정을 줄 부분을 찾아내며 스스로 만족한다.



겁쟁이에게는 항상 시작이 가장 어렵다. 아직 시작의 ㅅ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이 겁나겠지만, 많이 무섭겠지만 그래도 내가 도망치지는 않기를 바란다. 겪어보고 그만하는 것과 겁먹고 도망치는 것은 다르니까.




내 장점은 뭐든 좋은 점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별로인 사람에게도, 안 좋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낸다. 배울 점을 발견하고 반성하며 성장한다. 무수한 두려움 끝에 몸소 부딪혀 마주한 현실에서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길. 내가 나의 용기를 칭찬할 날이 머지않았길.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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