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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Mar 03. 2024

청소년 생애사를 통한 ‘가난’의 고찰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돌베개, 2023

직접 겪어보기 전에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나는 조금 전 이 문장을 ‘알 수 없는 일이 많다’라고 적으려 했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아도 알아야만 하는 ‘어떤 일’도 있다. 과거도,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돌고 돌아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이야기, 중립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는 자세가 ‘외면’의 선언과 다름없는 이야기가 그러하다.


나는 ‘가난’과 ‘아이’를 전면에 내세운 저자 강지나의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일찍 구입해 두고 책장을 열기가 두려웠다. 부자들의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시대, ‘가난’과 ‘아이’는 선뜻 ‘문제’ 삼기가 꺼려지는 주제다. 사람들은 가난한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서사에 무엇을, 어떤 결말을 기대할까. SNS와 관찰 예능 속 셀럽의 일상을 ‘전지적 그들 시점’에서 보는 우리는 자주 ‘가난’을 흐린 눈으로 본다. 막상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더라도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는 ‘개인’에게 아이들의 가난은 빈곤 포르노 혹은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우려도 있다.


책은 가난이 ‘대물림’되는 양상을 밝힌다. 저자의 성취는 10년간 청소년 생애를 좇아 가난이 이들의 삶에 어떻게 남는지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선별과 경쟁’에서 살아남아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존재로, 어른의 보살핌을 받는 미성숙한 존재, 목소리 없는 존재로 취급받다가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즉시 “잔혹”하고, “흉포”하며, 무서운 “악마“라는 단어로 소비되곤 한다. 청소년 현안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기도 전에 어김없이 다가오는 ‘수능’과 ‘대입’ 앞에 고꾸라질 뿐이다.


책 속 여덟 청(소)년은 성장 과업 앞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삶의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저자는 아이들의 시점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실었을 뿐이다. 빈곤이 대물림되는 삶을 극복하려는 이들의 분투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여러 선택지를 누리는 여타 청소년의 노력과 분명히 다르다. 무심히 아이들의 ‘용기’에 손뼉 치던 독자들이 가난에 ‘대응’하는 이들의 모습에 머무르게 되는 이유다.


저자는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을 인용하여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p.146)이라 재정의한다. 아이들이 입모아 말하는 것은 생애 전반의 물리적 가난에 대한 어려움이 아니라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드는 안전망의 부재였다. 성취에 함께 기뻐하고, 실패를 위로해 줄 안전망의 존재는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p.38)가 된다. 자신이 삶을 무난히 살아내는 중이라 생각하는 이라면 함께 울고 웃어준 다양한 ‘곁’의 존재에게 빚진 셈이다. 그런 조건 없는 도움이 또 다른 도움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책 속 청(소)년들도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p.8)다.


저자는 학교의 존재 이유를 일관되게 묻는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날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교는 미래를 탐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어느새 청소년에서 청년이 된 이들의 현재의 가난과 미래를 위한 대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저자 강지나의 또 하나의 성취가 있다. 저자는 함부로 아이들의 대변자인 양 자처하지 않았다. 함부로 그들을 입 닫게 만드는 게 아니라 문화기술지라는 질적연구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고스란히 옮겼다. 어른의 개입이나 판단으로 굴절되지 않는 목소리다. 누군가의 말을 전하는 행위란 고통이나 어려움을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귀 기울이는 기다림을 의미한다. 저자는 청년 문제를 “한 세대 내에서 보면 불평등이자 과잉 경쟁의 문제이고 국가적으로 보면 산업 구조의 재편 문제이며 세계적으로 보면 저성장의 문제”(p.276)라 짚어낸다. 또 말미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보다 보편적인 방식으로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을, 그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성찰하고 사색하라고 주장한다.


10년을 아우르는 저자의 고찰에 대한 대안으로 가름해 버리기엔 다소 아쉽기만 한 결론이다. 허나 김승섭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질문을 포기할 수는 없”(『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동아시아, p.6)다고 썼듯 해답을 향해 더디 가더라도 현실의 작은 것을 들여다보고 변화의 가능성을 찾는 경험은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학교교육도 여기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물론 읽고 쓰며 사색한다고 해서 모두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쩌지 못할 상황에서 드는 무력감과 불편함만 늘지도 모른다. 그러나 함께 읽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면 비록 속도는 더딜지라도 읽고 써낸 우리만은 천천히 바뀌고 있노라 ‘희망’하게 되지 않을까. 책방에 들러갈 이들에게 끝없이 권할 귀한 책이다.


ㅡㅡㅡ


#책방에서 열린 열번째 담쟁이독서회를 정리해보았다. 입시와 교육이라는 거대 키워드 아래 ‘청소년’은 지워지기 일쑤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토론도서는 10년에 걸친 가난한 청소년의 생애사를 추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귀하다. 바로 학자이자 현직 교사인 저자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다.


4월 중순 책방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번 독서모임은 더욱 각별하다. 협동조합이라는 운영방식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소원책담이 기존 회원들과 아직 발들이지 않은 무수한 새 회원들에게 내미는 첫번째 출사표이기도 하다. 첫 행사이니만큼 무탈히 치르는게 중요하겠지만, 참여자에게도, 저자에게도,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로 다가갔으면 한다. 온라인 독서모임도 준비중이다.


*소원책담이 궁금하시다면,

1. 인스타그램 @swbookstory

2. 혹은 링크

https://www.instagram.com/swbookstory?igsh=MXBzYzdjMTg1Nm1veg==​​

3. 혹은 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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