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명의 씨앗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품다
하반기에는 새 가족을 맞이하려는 시도를 계획하긴 했다. 하반기로 잡은 이유는 남편의 수험 생활이 상반기 동안 이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선 다소 어른의 영역이긴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힘이 필요하다. 모두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하지만 남편은 회사도 다니며, 퇴근 및 주말엔 공부도 하며 체력까지 비축하기가 조금 벅차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새 가족 맞이하기 프로젝트는 하반기로 넘어갔다.
남편이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은 7월이었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나도 나름의 남편 내조에 힘썼다. 가장 큰 힘을 쓴 부분은 바로 식단이다. 시험이 있는 주간에는 두뇌 회전에 좋다는 고등어를 구워주었으며, 생전 처음 도전해 보는 연어 스테이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나도 남편의 컨디션이 나빠지지 않도록, 되도록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신경을 썼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집안일을 함께하는 빈도도 줄어들었기에 나도 나름의 고생이 추가되었던 시기였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나도 후련했지만, 남편도 보상심리가 발동했다. 그 이유인즉슨 작년 미국 신혼여행 이후 수험생활을 보내느라고 이렇다 할 여행을 가지 못했다. 가까운 나들이도 쉽게 가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8월엔 홍콩 여행,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는 9월엔 일본 여행을 잡았다. 다가오는 10월엔 시아버님의 칠순을 기념하여 시부모님과 베트남을 미리 예약해 놨었기에 8월부터 10월까지 매월 해외여행을 가는 스케줄이 되었다. 갑자기 여행이 풍년이라며 우리 부자 된 거 같다며 남편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험이 끝나고 본격적인 새 생명 만들기 시도를 했던 7월, 그달 말 갑자기 기초 체온이 오르고 뭔가 신체의 다름이 감지되었다. 초기 증상은 감기몸살과도 비슷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확인해 본 결과, 두 줄이 확인되었다. 결과는 임신이었다.
남편과 나는 처음 겪는 상황에 다소 혼란스러워했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첫 시도에 이렇게 빨리 새 생명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일단 당장 홍콩과 일본 여행이 문제였다. 산부인과에 가서 여행을 가도 되는지 문의했다. 우리가 여행으로 잡은 시기는 한창 여름이기도 했고, 그때쯤이면 입덧을 시작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즉 산모의 컨디션이 여행을 하기에는 쉽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또 비행기를 탑승하면 방사능에 노출된다. 이제 막 새 생명을 시작하는 태아에게 좋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병원에서는 권고하지 않았다. 결국 홍콩과 일본, 베트남 여행을 내리 취소했다. 베트남을 가는 시기에도 완전한 안정기라고 보기는 어려워 시부모님이 걱정을 하셨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는 왜 그렇게 조심해야 하는 가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달은 사건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임신 초기를 다소 쉽게 생각했다. 아직 아기가 크지 않기에 몸이 가벼운 시기이니 평소와 같은 나들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했다. 그리하여 하루 만보 정도는 가능하다 생각했고, 그동안 가지 못했던 나들이를 부지런히 다녔다. 그런데 그즈음 피 비침이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니 해줄 순 있는 건 없고 무조건 안정만이 정답이라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임산부에게 하루 만보는 무리가 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얼떨결에 품은 새 생명은 그냥 자연스레 잘 자라는 줄 알았지만, 작디작은 새 생명은 너무나 연약했다.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극초기에는 생명이 아직 1cm도 안되기에, 유산 확률이 높은 이유가 자궁에 고인 피에도 아기가 휩쓸려 나올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생명이 1cm도 안된다는 사실에 놀라며 그때부터 장시간 걷는 것도, 오래 서있는 것도 경계하려 했다.
조심해야 할 사항,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찾아보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쪼그려 앉는 자세도 자궁에 부담을 줄 수 있기에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했다. 먹어도 되는 음식,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알아보는 일부터 방문해야 하는 장소를 고르는 일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임산부의 면역력은 일반인보다 떨어져 있는 상태로 지속되기에 균에 감염되기도 쉽다. 따라서 너무 사람이 많은 장소는 위험했다. 해외여행을 취소하고 대신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갈 호텔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나는 여름을 맞이하여 한 번쯤은 수영장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초기 임산부에게 수영장 노출은 다소 위험할 수 있었다. 특히 수영장에서 미끄러지면 큰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아가의 소식에 남편은 물론 기뻐했다. 나도 기뻤다. 그렇지만 초보 엄마 아빠는 허둥대었다. 나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5주 차부터 검색을 하기 시작했으며 6주 차부터는 여기저기 움직여야 했다. 보건소에 임산부 등록을 했으며, 산전 검사를 했고, 국민행복카드를 신청했다. 남편도 태아 보험을 찾아보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며 신경을 쓰게 됐다. 함께 산후조리원을 알아보고 등록을 하러 가기도 했다. 남편은 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토록 자주 방문하던 스터디 카페도 통 가지 못했다. 또 다른 자격증 취득을 위해 추가 등록했던 터였다. 하지만 나와 태아 건강에 집중을 하게 되면서 신경을 써야 하는 자격증 공부를 하기 어려워했다. 임산부가 봐야 할 책을 사다 주고, 임산부 영양제와 두유도 주문해 주며 함께 극초기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면서 남편은 아무도 직접 겪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이라며 이 시기를 기록해놓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임신하면 출산이 자연스레 되는 모습만 보아왔지, 이렇게 자세하게 임신과 출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기에 아직까지도 새로움의 연속인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동안 브런치를 작성하지 못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극초기가 힘든 이유는 생명이 너무 작기에 태동을 느낄 수도, 그 존재를 느끼기도 쉽지 않다. '잘 있나...?'의 연속이기에, 꽤나 신경이 쓰인다. 입덧이 있기에 음식을 먹기도 쉽지 않다. 유산의 위험도 무시하지 쉽지 않다. 그래도 병원에 가서 젤리곰을 확인하고 온 날은 무척 귀여워서 그 걱정이 전부 해소되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