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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Sep 13. 2022

"글이 푸석하고 딱딱해지더라고"

통찰력은 생기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25살에 처음 만나 꿈을 같이 꾸던 친구들이 있었다. 함께하는 세계 여행을 기획했었고, 가슴 벅차던 날들이었다. 그즈음 부모님은 하고 싶은 것 다하며 사는 딸을 조금 벅차 했다. 24살엔 혼자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왔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세계를 돌아보고 싶다는, 내 발로 직접 세계를 다녀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에 꽂혀있었다. 매일 전 세계 지도를 보며 가고 싶은 곳들을 떠올리던 밤들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잠 못 들던 밤들이었다. 


그럴수록 부모님은 이상을 그리는 딸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나 보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겠니'와 같은 말들이 오고 갔고, 결국 난 그 여행은 포기하기로 했다. 


아쉬웠지만, 친구들의 여행 중간중간, 국내에서 할 일이 생길 때 조금씩 일손을 도우며 지켜봤다. 그즈음 나는 한국에서 현실을 돌보았고, 다음 해 취업을 했다. 


그때의 난 이상적이었고, 그랬기에 이것저것 꿈을 꿨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몸소 깨달은 후에는 교육에 종사하며 조금 다른 시도들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고, 국내 공기업에 취업하며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을 해보며 어떨까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날들이었다. 


그때는 지금 생각하면 참 팔딱-팔딱했다.


깨어있는 척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있어 보이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고. 진짜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진심'이었기에, 그 꿈들이 현실에 부딪혀 깨어져나갈 때마다 큰 성장통들을 겪었다. 지금도 아예 안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 사람이기에, 그때도 내가 이렇게나 진심이니까 이루어질 줄 알았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진심보다는 역량이 필요했다. 서른이 넘는 지금에서야 이제는 보인다. 그때 내가 '진심'이라는 마음 하나로 얼마나 무모한 시도들을 했었는지. 얼마나 큰 이상들을 꿈꿨었는지.


어제 25살에 처음 만난 그 친구와 대화를 했다. 


나 : "난 이제 마음이 그렇게 거추장스럽지는 않아. 이제 그런 이상을 많이 내려놓고 굳이 따지자면 현실주의자가 되었거든. 이제는 간단해. 현실적인 요소가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게 돼. 이제는 거추장스러울 마음이 없어. 근데 오히려 그렇게 되니까 좀 더 객관적으로 내 실력을 보게 된 건 있는 것 같아. 그때는 오히려 너무 진심이어서 시야가 좁았던 것도 있는 듯. 사람들이 내 진심 알아주겠지? 하면서. 진심이 너무 투박했어. 이제는 글 쓰면서도 좀 덜 취하게 됐어."


친구 : "오 좋네 깔끔하니! 맞아 객관화 가지는 건 좋은데 또 한편으로는 예전 글쓰기가 가졌던 생동감이나 현장감이 이제는 안 나오기도 하더라고. 그래서 그건 좀 아쉬워"


나 : "아 맞아! 마냥 재치 있던 그런 팔딱팔딱함이 없어. 무뎌짐! 맞아 무뎌짐이 두려웠어.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어서 적응해나가는 중"


친구 "맞아 그러니까 글이 엄청 푸석하고 딱딱해지더라고. 동시에 가져갈 순 없나. 뜨거움과 위트도 있으면서 통찰력도 가진 글 쓰는 사람 부러워"


나 : "희소해지는 거지 그러면 항상 객관화와 순수한 마음과. 잘 늙어감의 표본 같은...!"





얼마 전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를 보았다. 청춘 그 자체인 드라마. 거기에 나오는 OST. 자우림의 '스물다섯스물하나' 곡은 아는 동생과 함께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를 여행하며 빨간 지붕들을 볼 때 처음 들었던 곡이다. 서로 지금 이 순간과 잘 어울리는 곡을 하나씩 선곡하기로 했었는데. 그 동생이 그 노래를 선곡해서 그곳에서 그렇게 처음 들었던 노래다. 내게도 청춘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현실에서 깨지고 무너지기도 하면서. 더 이상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사실 놀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녀시대가 부른 소녀시대의 소녀 느낌을 좀 가미하고 싶었다.)할 수도 없는 성인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순수함을 간직하면서 이십 대 때 처음 무언가를 경험할 때의 팔딱거림이 있는! 날 것의 글을 쓰면서도. 이제 어른의 시각으로 보는 통찰력까지 가미하면서. 푸석해지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하는 내가 된 것이다. 


조금 문학병을 앓았을 수도 있고. 철없는 청춘이었을 수도 있고. 좀 더 유난히 팔딱거렸던 거일 수도 있는 내가. 이제는 


현실 위에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부터 구상하게 된 나로 말이다. 



점차 실력은 갖추어 가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처음 경험할 때의 느끼는 순수함을. 아예 잊지는 않는 어른으로서 계속 글 쓰면서.



내 글이 푸석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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