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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는 잘 있습니다 Sep 22. 2020

씨앗, 애쓰지 마. 너는 본디 꽃이 될 운명이니.

 '씨앗, 너무 애쓰지 마. 너는 본디 꽃이 될 운명이니.'

담양 죽녹원에 가면 키가 큰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무리 지어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란 하늘에 닿을 듯 솟아 오른 대나무들을 눈에 담기 위해서는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봐야 한다. 그렇게 한동안 웅장한 숲 아래 서서 나무들을 보다 보면 그간 도시에서 묻은 먼지도 마음에 맺힌 응어리들도 시원하게 날아간다.

 넘쳐나는 관광객들을 피해 대나무와 나만 오롯이 나오는 사진을 찍고자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아기 대나무였다. 대나무들이 이루고 있는 또 하나의 지평선에  한참 미치지 못해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받지 못하는 키가 작은 아가. 대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탓에 햇빛 한번 받지 못한 아가. 아기 대나무는 매일 올려다볼 것이다. 하늘에 닿을 듯 키가 큰 대나무들을, 그리고 꿈에 그린 하늘을.


나는 언제쯤 저렇게 클 수 있을까? 나도 사람들 눈에 들고 싶어.
나도 인정받고 싶어.


그리고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의 기억이 겹쳐졌다. 지금은 아주 오래전이라 기억이 어렴풋해졌지만 가끔 싸이월드나 일기장에 끄적였던 그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그때의 감정들이 선명해지면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이제는 극복해냈구나 하고.

첫 직장에서 나는 혹독한 생존기를 겪어야 했다. 9명의 선배교사들 사이에서 혼자만 경력이 전무했던 나. 갓 대학교를 졸업하여 경력 하나 없는 나를 믿고 담임으로 써주신 것은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그분들의 기대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한없이 작아졌다.

그리고 교사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수업을 공개하는 '동료장학'을 매주 두 반씩 실시하고는 했었는데 나는 공교롭게도 7년 차 선생님과 같은 날 수업을 공개하게 되었다. 온갖 찬사로 가득했던 그 선배 선생님의 수업 평가 후에는 내 수업에 대한 평가들도 이어졌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다른 선배들에게서 어떤 코멘트를 받을지 예상은 했지만 참 차갑고 따가운 말들이 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으며. 괜찮아, 괜찮아, 다독이며. 나는 그렇게 1년을 버텼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시간은 흘렀고 공교롭게도 나는 다시 돌아갔다.  이제 나도 7년 차. 함께 동료장학을 했던 선배교사의 경력만큼 어느새 나의 경력도 채워졌다. 나는 더 이상 혹독한 생존기도 아니고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괴롭지 않다.

문득, 어디선가 보았던 글귀가 떠오른다.

씨앗, 너무 애쓰지 마. 너는 본디 꽃이 될 운명이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미성숙한 것은 언젠가 성숙해진다. 물론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들을 허투루 쓰지 않고 성심껏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하루가 모이고 모여 단계적 발전이라고 할 만큼의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니.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자라고.

씨앗, 너무 애쓰지마, 너는 본디 꽃이 될 운명이니. <부평구 2019, 봄편 공감글판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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