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피는 것들을 보면 뭉클하다. 한자리에 그대로 멈추어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열심히 가고 있는, 되어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것들. 나는 친구들에 비해 느리게 사회에 뛰어든 편이다 보니 느린 것들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다른 꽃들이 예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을 때 묵묵히 화분에 발을 박고 자리를 지킨, 봄여름 내내 끝이 거뭇거뭇 바스러지는 이파리를 달고도 아프다 한 번 않고 침묵해온 국화가 이제야 뒤늦게 꽃을 피웠다. 사실 나는 국화가 가을꽃인지 몰랐다. 그래서 작년 겨울, 첫눈이 내릴 무렵 국화가 활짝 피었을 때 신기하고 대견스럽기만 했었다. 사실 국화를 집에 처음 들여오고 국화는 꽃을 피우기는커녕 한참을 시름시름 앓기만 하여 국화를 사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 국화가 다른 꽃들이 겨울을 준비하며 쇠퇴해 갈 때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보여주었다. 첫눈이 올 즈음 국화가 활짝 만개한 것은 마치 나에게 인생의 섭리를 일깨워주는 것 같아 더 감동적이었다.
느리게 피는 것이 있단다. 누구나 인생의 한 번은 활짝 피는 시기가 온다. 그 시기가 다만 빨리 오고 늦게 오고의 차이일 뿐. 피는 시기는 중요하지 않아. 너도 그렇단다.
그 뒤로부터 국화는 내가 키우는 꽃들 중 가장 특별한 꽃이 되었고 함께한 지 햇수로는 벌써 2년이 되었다. 비록 국화를 가을꽃이라는 범주에 넣으면 느리게 피는 국화의 특별함이 무엇인가 보편적인 가을꽃의 특징이 되어버린 듯해서 김이 빠지지만, 올해도 국화가 개화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변함없이 감격스럽다. 물론 영원하지 않으리란 걸 안다. 국화의 시계도 서서히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으니 다른 꽃들처럼 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늦게 꽃 피운 만큼 오래오래 있다 갔으면 하는 게 국화에 대한 나의 바람이자 애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