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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는 잘 있습니다 Aug 19. 2020

이제는 네가 섬에서 나올 때가 된 것 같구나

 사랑하는 나의 소녀야. 그래. 이제는 네가 섬에서 나와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상처 받는 것이 싫어서 섬이 되어 버렸다고 했지? 네 편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쳐 굳게 문을 닫아버린 너를 생각하니 그동안 세상살이에서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느껴지더구나. 가까이에서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네가 내 앞에 있다면 너를 꼬옥 안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구나.

 

  나의 소녀야. 그래도 나는 네가 그동안 사람을 전혀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하여 안심이 되었단다. 비록 그들이 너의 가족들, 혹은 네가 직장 생활을 하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너에게 안정감을 주는 몇몇 친구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들만큼은 네 작은 섬에 들여보냈다고 하니 대견스럽구나. 그동안 한정된 인간관계였다 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덜 외로웠을 것 같아 다행이구나.

 

  나의 소녀야. 그동안 네가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며 나에게 보내 주었던 엽서들을 나는 소중히 가지고 있단다. 네가 처음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며 새해 첫날 순천의 선암사에서 나에게 보냈던 엽서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너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자유로워 좋다고 했고 그 뒤로 너는 가끔씩 훌쩍 혼자 떠나더구나. 그때마다 항상 나에게 잊지 않고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주어 고마웠단다. 너에게 여행은 유일한 탈출구인 것 같아서 나는 네가 여행 다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단다.

 

제주도 용두암

  그리고 제주도 여행에서 보낸 엽서도 잘 받았다. 거기가 아마 용두암이었지? 흐리고 비 오는 날씨에 파도가 사납게 일렁이기까지 했지만 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앞에 우뚝 서 있더구나. 바람을 등지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활짝 웃고 있는 네 모습이 용감해 보였고 단단해 보였다. 거기에서 너에게 작은 변화가 느껴졌단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번 편지에 적힌 너의 고백들을 보고 참으로 놀라면서도 기뻤단다. '혼자 하는 여행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혼자보다는 둘이고 싶어요. 그동안 혼자 여행이 진짜 여행인 마냥, 혼자 여행의 좋은 점만 생각하며 나 자신을 속여 왔어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너는 외로움이 사람들에게서 받는 상처 못지않게 힘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는 싫지만 혼자가 편해서 이 지겹고도 긴 표류기를 도무지 끝낼 수 없다는 너의 고민 때문에 나는 마음이 답답했단다.

 

  그렇다면 이제는 용기를 내어보렴. 너는 깨지기 쉬운 유리가 아니란다. 너의 팔과 다리, 마음은 부딪혀도 쉽게 깨지지 않는단다.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지.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나날이 강해질 것이란다.

 

  축하한다. 소녀야. 너는 이미 네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는 것 같더구나. 제주도의 가을 억새가 보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제주도도 가고 좋아하는 글쓰기를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을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지? 너의 새로운 시작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좋은 소식을 편지로 알게 되어 아쉽구나.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과 흥분된 목소리로 직접 들어야 할 소식인데 말이다.

 

  둘이 하는 여행,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시도가 조금은 긴장되고 부담도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혼자였던 섬에서보다 훨씬 너에게 행복감을 줄 것이리라는 점이란다. 기특하구나. 소녀야. 너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너를 사랑하는 유리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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