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덩어리, 유리 인간, 종이 여자. 이젠 정말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대로 살아가기에 도처에 바이러스가 너무 많다. 정말 뜯어고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뭔가 달라질 필요가 있다 느낀다. 정말 이제는.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체스의 모든 것'의 국화의 장래희망. 이기는 사람. 누구를 이기겠다는 것, 어떤 상태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이기는 사람이 되리라는 것. 부끄러움이 나를 괴롭게 한다. 부끄러움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아래로 아래로 밑으로 밑으로 끝없이 끝없이 추락하는 가라앉는 침전하는 느낌. 이런 모멸감과 좌절감, 부끄러움을 이기고 무디고 무던하고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집에 오는 순간 모든 것이 리셋되고 마음도 머리도 분리되었으면 좋겠다. 마음도 단순해졌으면 좋겠다. 까마득한 밤의 골목길. 그리고 잘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곳에는 가로등이 있다. 미세먼지만큼 작아서 안 보이는 것도 아닌 형체가 뚜렷한 그것이 왜 평소에는 눈에 잘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익숙해서? 가로등이 은은히 발산하는 약한 빛보다 더 거센 칠흑 같은 밤이 더 거대하게 느껴져 밤에만 꽂혀있기 때문일 거이다. 가로등은 비록 밤을 낮으로 만들 만큼 완전히 어둠을 밀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것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앞을 잘 보고 걸어갈 수 있다. 나는 가로등의 소중함을 잘 체감하지도 감사함을 잘 느끼지도 못한다. 막상 정전이 되거나 가로등이 없어져봐야 그 자리에 가로등이 있었다는 걸, 덕분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완전한 어둠에 있던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을 거다. 나에게는 어떤 가로등이 있을까? 나와 항상 함께 있어주는 존재들. 그 존재들에 집중하자. 어둠에만 꽂혀 좌절하지 말고 내가 가진 가로등들에 감사하고 그것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더 행복해지겠지.
덧붙여... 내 내면의 소프트웨어를 좀 고쳐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매사 힘든 일이 찾아오면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시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랐는데. 곧 회피하곤 했었는데 이젠 그렇게 살기 싫다. 당당해지고 싶다. 이기고 싶다. 다만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이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