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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는 잘 있습니다 Jul 19. 2022

나는 충분한 사람입니다

작년 마르코 그룹 봉사를 마치고 그룹원에게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마르코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고 압화로 만들어진 예쁜 액자를 주셨는데 액자에는 성경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너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딸, 내 마음에 드는 글라라이다."

본래의 말씀은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구절로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이지만 여자인 저에게 맞게끔 몇 개의 단어들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자매님은 그룹 나눔 때 나누었던 저의 고민들을 기억하고 하느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종종 액자를 들여다볼 때면, 이렇게 특별한 선물을 주신 자매님의 따뜻한 마음에 참 뭉클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성경 말씀은 저에게 그리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감정적이고 예민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잘 보며 걱정도 불안도 많은. 그래서 때때로 저의 이런 성향들을 갖고 살아가기가 벅찰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제 모습에 대한 못마땅함과 불만들이 폭발할 듯 터질 뻔했던 순간이 찾아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저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감정적인 것은 감수성이 풍부한 것으로, 예민한 것은 섬세하고 세심한 것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잘 보는 것은 공감능력이 높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평소에 단점이라 생각했던 점들을 하나둘씩 긍정적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니 저는 단점은 없고 장점만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아마 나는 이렇게 보일 것입니다. 단점은 없고 장점만 있는 사람. 그저 예쁘기만 한 사람. 그렇기에 하느님께서는 내 모습 이대로 충분하다며 나를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죄송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나에게 감수성과 섬세함, 높은 공감능력 등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좋은 은총들을 선물로 주셨는데 그동안 나는 왜 그 선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투정을 부렸을까요? 왜 그 선물을 하찮게 여기고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다른 사람의 선물을 탐냈을까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 내게 꼭 어울리는, 내게 꼭 필요한 은총을 선물로 주셨는데, 나는 왜 그 선물을 거부했을까요?

이런 나의 지난 모습들을 떠올리자 내가 마치 ‘달란트의 비유’ 속에 나오는 어리석은 종처럼 느껴졌습니다. 주인이 준 달란트를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여 몇 곱절로 불렸던 다른 종들과 달리, 달란트를 그저 땅에 묻어두기만 했던 어리석은 종. 그 종의 모습에서 부끄러운 저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저에게 이미 은총을 넉넉히 담아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당신께 받은 은총을 알아보고 가치 있게 쓰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화해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나를 미워했던 나 자신과, 그리고 나만 미워하시는 것만 같았던, 나에게만 은총을 안 주시는 것만 같았던 하느님과도 화해했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내 모습을 이대로 받아들이고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랑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짐해봅니다. 그분께 받은 감수성과 공감능력, 섬세함과 세심함을 하찮게 여기지 않겠다고. 다른 은총들로 바꿔달라 요구하지 않겠다고. 대신 요긴하게 활용하겠다고!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나는 충분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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