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이 포르투에 오시기로 했거든.
늘 걱정하셨을 거야.
다 크긴 했지만 부모님에겐 아직 어린아이일 테고,
자취도 안 해본 딸이 해외에서 살고 있다니.
그래서 일거야.
일 년에 한 번 가시는 해외여행을 포르투갈 포르투로 정하신건.
부모님이 오시기로 한 날.
도착시간은 분명 밤이거늘 낮부터 괜히 분주했어.
집 청소와 정리를 해야 했고,
장을 봐와서 저녁 준비를 했어.
사실 분주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어.
반년 만에 만나는 부모님이라 굉장히 들떠있었거든.
제이와 함께 공항에 마중을 나갔어.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랑 아빠의 모습이 보였어.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울컥했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그렇지 않은 척했어.
오랜만에 보는 엄마는 여전히 예뻤고, 아빠는.. 에휴.
비행기 안에서 주는 술을 계속 시켜마시다가 술병이 나있었어.
노랗게 뜬 얼굴로 꽤액-거리며 등장하신 아빠.
참으로 아빠다운 등장이었어.
제이가 렌트한 차를 가지러 간 사이 나는 부모님과 함께 포르투를 거닐었어.
몇 달을 머물며 알게 된 포르투에 얽힌 이야기도 해드렸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이라는 상벤투 역을 지나
도우루 강이 바로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샹그리아를 마셨어.
렌터카를 몰고 온 그와 합류해 힐 가든으로 갔어.
부모님에게는 이미 익숙한 풍경일 거야.
해가 저물 무렵의 아름다운 풍경을 부모님에게 공유하고는 했거든.
몇 번을 동영상으로 혹은 사진으로 보셨던 풍경.
마침 부모님이 오신 날은 내가 본 포르투 하늘 중에 가장 오묘하고 아름다운 날이었어.
마녀가 하늘을 날아다닐 것처럼 빨갛다가 솜사탕처럼 분홍빛으로 변해가더니 보랏빛 하늘이 이어졌어.
보라색은 자연스레 밤을 가져다주었지.
그 풍경을 눈으로 직접 마주하신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엄마랑 아빠랑 그리고 제이도 함께.
이 풍경을 바라보며 포트와인을 마시다니.
순간 울컥해서 목이 메어오는걸 누르려 와인을 입에 머금었어.
볼이 불그스레 해질 때쯤 하늘엔 어둠이 짙게 깔렸어.
이 날, 이 하루는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부모님이 포르투에만 계시기엔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을 보여드리고 경험하게 해 드리고 싶었지.
차를 빌린 이유도 여기에 있어.
포르투갈 남부로 갔다가 스페인으로 넘어갈 계획을 세웠거든.
부모님과 함께 하는 로드트립은 그의 아이디어였어.
제이도 나의 부모님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나 봐.
아침 일찍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포르투갈 남부에 위치한 페니체였어.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알아도 굳이 찾아가려 하지 않는 곳이었어.
그곳에는 베를렝가스라는 섬이 있는데 하루에 350명만 갈 수 있고 보트를 타고 들어갈 수 있어.
보기만 해도 청량한 바다와 여러 종류의 새들, 자연으로 가득한 이 섬은 나라에서 보호하고 있다고 해.
우리는 고속 보트를 타고 섬으로 향했어.
의자에 걸려 있는 우비를 보고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
안 좋은 예감은 늘 틀리지 않고 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몰골이 엉망이 되어있었어,
머리는 미역처럼 되고, 바지는 오줌 싼 거처럼 젖어있고, 마스카라는 검은 눈물이 되고.
섬에 도착해 우리는 보트 투어를 했어.
보트의 가운데는 유리로 되어있어서 물아래 어떤 생물이 있는지 보였어.
보트는 어떤 요새에 우리를 내려줬어.
그 요새는 옛날에 정치범 수용소였던 곳으로 지금은 호스텔로 이용되고 있었어.
요새를 시작으로 섬을 한 바퀴 둘러봤어.
맑은 공기, 푸릇한 자연, 그리고 부모님과 제이.
아 좋다.
짧게 섬을 둘러본 후 차를 달려 리스본에 도착했어.
저녁을 먹고 펍을 갈까, 거리를 걸을까 고민하던 차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부모님과 함께 카지노를 가는 거야.
일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간 마카오 여행에서 카지노 리스보아를 지나친 적이 있는데,
진짜 리스보아(리스본의 포르투갈어)에서 카지노를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말은 “나 그런 거 안 좋아해.’라고 하던 아빠의 눈이 가장 빛이 났었어.
이 날 성적은 비밀이야:)
다음날 우리는 리스본 근교로 향했어.
먼저 간 곳은 신트라였는데 이 곳에서 제이가 부모님께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연 것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과 포르투갈의 경제가 왜 안 좋아졌는지까지.
난 이렇게 가이드해주려고 그가 얼마나 공부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어.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부모님과 나는 순식간에 이야기에 매료되었어.
부모님은 이야기에 빠져드는만큼 그에게 빠져들었지.
신트라에 이어서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호카곶에 갔어.
무슨 바람이 그렇게 세게 부는지 벌벌 떨면서도 해가 지는 모습은 입을 벌리고 바라봤어.
그 와중에 제이는 드론을 꺼냈어.
부모님의 여행을 조금이라도 더 생동감 있게 남겨주기 위해서였어.
평생 할까 말까 한 로드트립에 드론 영상이라니.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걱정을 했었어.
제이가 나의 부모님을 어렵게 생각하진 않을까 하고.
막상 부모님과 만난 그에게 물었어.
“우리 엄마 아빠랑 여행하려니 불편하지 않아?”
“아니, 전혀. 이미 알고 지낸 것처럼 편해. 어머니 아버지 너무 재밌으셔! :)”
하아, 이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