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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Jun 16. 2019

식당 딸

포르투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식당을 하셨어.

두 분이 해주신 음식을 먹으며 어렸던 나는 어른이 되어갔어.

함정이 하나 있다면 요리 잘하는 부모님의 딸인 내가 요리를 못한다는 거야.

그럴만한 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눈 앞에 요술처럼 나타나니,

내가 해 먹어야지 하고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

요리의 ‘요’ 자도 모르던 내가 요리를 하게 된 건 포르투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서부터야.




포르투에 온 첫날, 제이는 날 위해 맛있는 카레를 만들어줬어.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아침으로 간장계란밥을 해줬어.

기호에 맞게 넣어 먹으라며 참기름과 간장을 줬어.

코딱지 파먹을 때 이후로 처음 먹는 간장계란밥.

사실 간장을 얼마나 넣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간장을 콸콸 부어버렸지.


제이는 순간 놀라서 소리쳤어.

“어어? 뭐 하는 거야?”

“응? 나 사실 간장 얼마큼 넣어야 하는지 몰라..”

제이는 간장을 들이붓고 있는 날 보며 생각했대.

‘돈도 내가 벌고, 청소도 내가 하고, 밥도 내가 해야 하는 건가..’


포르투에 길게 머무르게 되면서 나의 하루는 한가해졌어.

그에 비해 제이의 하루는 매일이 바빴지.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그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었어.

어라, 그러고 보니 밥을 어떻게 하지?


복장은 흡사 일식집 주방장인데, 현실은 손가락 베기 달인이었다.


솟아나는 의욕에 비해할 줄 아는 게 ‘1’도 없었어.

밥을 짓는걸 제이한테 배우고 본격 요리 공부를 시작했어.

유튜브와 네이버 블로그, SNS를 탐색했어.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닭볶음탕 등.

먹고 싶은 게 많은데 안 해 버릇을 해놓으니 시작하기가 어려웠어.


요리를 하려면 장을 봐야지.

중국 마트에 가서 고춧가루와 간장, 쌀, 김치를 샀어.

집에 오는 길에 핑구도세에 들렀어.

눈에 익숙한 채소를 장바구니에 넣고,

달걀, 음료, 와인도 넣었어.

남은 건 고기야.

삼겹살이 포르투갈어로 뭐더라.. 하.

산 넘어 산이었어 정말.


정육 코너에 가서 표를 뽑고 기다렸어.

내 차례가 되어 직원 앞에 섰어.

뭘 원하냐는 직원의 표정에,

“Porco..!(돼지..!)”라고 말했어.

그리고 내 배를 통통 쳤어!

삼겹살을 원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내가 음식을 하면, 그는 설거지를 해줬어.


룰루랄라, 장을 봐와서 요리를 시작했어.

제일 만만한 시금치나물을 하고,

감자조림을 했어.

메인으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만들었어.

조촐한 상을 차리고 그가 오길 기다렸어.

그를 기다리는 집 안에는 고소하고 매콤한, 집밥 냄새가 났어.


일을 마치고 집에 온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킁킁거렸어.

“오! 맛있는 냄새난다!”

그러게, 냄새만큼이나 맛이 있으면 좋겠는데..

나무젓가락과 숟가락을 놓고, 흰쌀밥을 담은 밥그릇을 상 위에 올렸어.

반찬과 찌개를 올려놓자 제법 보기엔 좋은 상이 차려졌어.


사진을 찍고 첫 술을 떴어.

음?

어라.

이게 아닌데.

엄마가 해준 거랑 맛이 왜 이렇게 다르지.

제이는 내가 해준 정성을 생각해서인지 맛있다고 했어.

그래, 선의의 거짓말을 안 했으면 내가 삐졌겠지.


사람들을 불러다 밥을 먹이고 함께 술 마시는걸 좋아했다. 강제로 양갈래 머리를 드레스코드로 정했던 날.


쉬울 줄 알았던 요리는 생각보다 어려웠어.

손톱도 여러 번 날아가고, 피도 많이 봤어.

제이에게 매 끼니를 해먹이기로 마음먹고,

매일 매 끼니를 요리하면서 손에 익기 시작했어.

2% 부족했던 내 요리도 완성도가 높아져 갔어.


입 짧은 제이는 먹는 양이 늘 작았었어.

그랬던 제이가 한 공기 먹던 밥을 두 공기 먹게 되었어.

제이의 얼굴은 나날이 동글동글해져 갔지.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어.

사랑하면 살이 찐다더니, 우리가 딱 그 모양이었어.

없는 재료를 구해다가 무조건 4첩 반상 이상은 차렸다.

엉성하게 시작했던 내 요리는 오로지 그에게 맛난 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불러온 마법이었어.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어.

정말 신기하게도 엄마가 한 맛과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맛이 나기 시작했어.

엄마가 해 준 밥을 먹고 자라서일까.

엄마의 손맛을 내 혀가 기억하고 있었나 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식당 딸 이십 년이면 요리왕 비룡이 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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