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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Aug 04. 2019

여행자의 도시와 광란의 밤

플라야 델 카르멘

덜컹덜컹

어릴 때 운동회 하던 날 먹던 솜사탕파란 하늘에 걸려 있었고,

움직이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나무, 나무, 나무, 그리고 .

차 안에는 에어컨이 빵빵했지만 옆에 앉은 뚱뚱한 아저씨 덕분에 앉은자리가 덥게 느껴졌어.

제이와 나는 여행자의 도시 ‘플라야 델 카르멘’으로 향하는 중이었어.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여행에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어.


칸쿤에서 '플라야 델 카르멘' 으로 향하는 길




오후 세 시.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제이와 내가 플라야 델 카르멘에 도착한 시간은 가장 더운 오후 세 시였어.

커다란 배낭을 뒤에 메고 앞에는 보조 가방을 멘 채로 뙤약볕을 걸어야 했어.

우리처럼 배낭을 멘 여행자들 사이로 자연스레 섞여 들었어.

제이와 나는 예약한 호스텔까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어.


리오 호스텔의 루프탑에 있는 방에 짐을 풀었어.

땀에 젖은 옷은 벗어던지고 짧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어.

습하고 더운 날씨지만 루프탑에서 파아란 하늘이 보이니 눈만큼은 시원하더라.

우리는 우선 호스텔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어.

지리를 익히는 데는 근처부터 공략하는 게 제일이니까.


플라야 델 카르멘은 휴양지인 칸쿤과 액티비티로 유명한 툴룸의 중간에 있는 도시로 여행자들이 많이 쉬어가는 곳이었어.

덕분에 다양한 나라의 여행자들이, 정말 여행자스러운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어.

더운 한낮에도 사람들이 거리를 거닐어서 거리엔 활기가 가득했어.

이런 곳에 있으면 괜히 신나고 설레는 거 알지?

플라야 델 카르멘은 작은 도시여서 걸어서 지리를 익히기에 좋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닐다 보니 어느덧 저녁때가 되었더라고.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 해 먹고 싶었어.

마음에 드는 곳에 와서 마음이 들뜬 날에 맛있는 음식까지 먹으면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 아니겠어?


플라야 델 카르멘은 바다도 있고 클럽도 있고 월마트도 있어.

무려 월마트라고!

제이는 더운 날씨와 이동으로 인해 피곤해했어.

“우리 그냥 오늘 한 끼는 밖에서 사 먹고 편하게 쉬자. 응?”

“응~절대 안 돼. 하루 한 끼 맛있게 먹어야 해. 나 밥 안 먹은 지 너무 오래됐어..”

“알았어. 가자. 가. 월마트.”


우리가 묵고 있는 호스텔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월마트는 한국에서나 보던 2마트나 로또마트와 같았어.

엄청 크고 깔끔한 월마트는 그야말로 천국이었어.

에어컨이 빵빵해서 들어서는 순간 천국인 줄 알았고 간장과 햇반, 라면을 판매하고 있었어.

심지어는 한국에서나 먹던 것과 거의 똑같이 통닭을 팔고 있었고 일식인 캘리포니아롤도 팔고 있었어.

공부할 때도 빛나지 않던 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기 시작했어.


가방 속 짐의 반은 한식 재료였다.


신이 나서 공격적으로 장을 본 우리는 한 손 무겁게 장을 보고 호스텔로 돌아왔어.

“자기는 사진 보정할 거 하고 있어. 내가 맛있는 밥 해줄게!”

“내가 뭐 안 도와줘도 돼?”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우리가 묵고 있는 호스텔에서는 조리가 가능했어.

식기구를 빌려서 쓸 수 있었어.


오랜만에 밥을 먹는다고 하니 손이 절로 움직였어.

미리 챙겨놓은 일본 쌀을 냄비에 불리고 마늘을 빻았어.

채소를 손질하고 불린 쌀로 밥을 지었어.

멕시코 고추가 맵다고 하니 우리나라 청양고추 맛을 내줄까 싶어서 잊지 않고 챙겨 넣었어.

하얀 밥이 뜸이 들길 기다리는 동안 수저와 포르투갈에서부터 챙겨간 젓가락을 놓고 밥을 퍼담을 그릇을 준비했어.

저녁 준비 끝!


잘 된 냄비밥을 퍼 담고 메인 요리의 뚜껑을 열였어.

오늘 저녁 메뉴는 빨간 돼지갈비찜이었어.

하얀 밥 위에 얹어서 한 입, 야무지게 양념에 비벼서 한 입.

오랜만에 먹는 쌀밥이 입안에 얼마나 챡챡 감기는지.

가득 눌러 담은 밥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더라니까.


허접해 보이는 이 상차림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거다.


기분 좋게 배도 불렀겠다, 이제는 입가심으로 술을 한 잔 할 때였어.

“우리 오늘 술은 동행을 구해서 마셔볼까?”

“동행?”

“응!"

“어떤 동행?”

“같이 술도 마시고 여기 밤 산책 다니면서 클럽 구경도 하고!”

“에에? 좋지이이이이!!!”


그렇게 구한 동행은 ‘도현’이었어.

도현이가 꽤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이때는 알지 못했지.

길이 엇갈릴까 봐 제이와 내가 도현이의 호스텔로 마중을 갔어.

꼬슬꼬슬한 파마머리.

하와이안 셔츠.

처음 만난 도현이의 모습이었어.


살짝 자유분방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매우 예의 바른 친구였어.

왜인지 하와이안 셔츠에 속은듯한 느낌이 들었어.

도현이 외에도 한 명의 동행이 더 있었어.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던 언니였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우리 넷은 밤거리를 거닐으며 이곳저곳 둘러봤어.

어디서 술을 한잔하면 좋을지 스캔했지.


가장 왼쪽에 자리 한 친구가 도현이. 도현이는 최장기 동행이 되었다.


유명한 클럽인 코코 봉고 앞을 지나가 보고,

그 근처에 있는 펍 앞에도 서성여 보고,

시끄러운 음악이 방방 들리는 클럽 앞에서 젊음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어.

여기는 너무 시끄럽고,

저기는 너무 비싸고.


우리는 결국 호스텔 1층에 위치한 펍에 들어갔어.

라틴노래가 나오고 있고 펍 안에는 사람들이 살사를 추고 있었어.

이거지.

멕시코에 왔으면 이런 분위기에 술을 마시고 춤을 춰야지.

입구에서 우릴 반겨주는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어.


코로나 맥주를 하나씩 시키고 자리에 앉았어.

바로 옆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목을 축였어.

사람들의 표정은 잔뜩 신이나 보였어.

이런 곳에서 내가 가만있을 수는 없지.

늘 그렇듯 클럽에서의 내 체력은 단 5분.

오 분만에 이 곳을 조지리라 마음먹었어.


비장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어.

이 속에서 군계일학이 되어 보일 테다.

알고 있는 춤들을 연이어 춰댔어.

그 모습은 마치 탈골이라도 될 듯이 보였을 거야.

인중에 땀이 주르륵 흐르자 춤을 멈추고 자리로 돌아갔어.

체감으로 5분은 넘게 춘 것 같았지.


자리에 돌아가 앉자마자 누가 뒤에서 손을 잡아끌었어.

까만 수염이 난 아저씨였는데 나쵸와 망토, 선인장과 잘 어울릴 것 같이 생긴 사람이었어.

그는 내게 춤을 추자고 했고 난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로 제이를 돌아봤어.

“크크큽크크큭. 다녀와!”

“에에에엥?”


여행하는 중간에도 짬짬이 일을 해야 했던 제이.


살사를 춘 건지 두더지 잡기를 한 건지 모르겠어.

아저씨의 발을 두더지 인양 무지하게 밟아 버렸거든.

춤이 끝나고 민망함에 웃어 보이며 자리에 앉았어.

누구야.

누가 또 손을 잡아끌어.


돌아보니 살사 고수로 보이던 아주머니가 호기롭게 손을 잡아끌고 있었어.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살사를 춰보았는데 그녀는 내가 춘 춤은 살사가 아니란 듯이 손가락을 저었어.

고집이 센 나는 내가 추는 대로 췄어.

그럴 때면 아주머니는 또 손가락을 저어 보이며 자기를 따라 하라고 했어.

그녀를 따라 하다가 또다시 내 체력에 한계가 왔어.

타임이 필요한 나는 자리로 가 앉았어.


그. 런. 데

또 누구니.

이거 혹시 신종 인종차별 혹은 괴롭힘이니?

제이와 박장대소를 하며 내게 나가 보라고 손짓했어.

“크크큽. 다녀와!”


이번엔 너네 뜻대로 춰주지 않겠어.

알고 있는 모든 춤으로 너희를 때려 주겠다!

양갈래로 땋아 내렸던 내 머리카락은 주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팔뚝을 때렸어.

찰싹찰싹

공격당한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열광을 했지.

워 호우!!!!

박수를 치는 그들을 보며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그들과 함께 춤을 춰야 했어.


나는 땀에 흠뻑 젖어서야 클럽을 나올 수 있었어.

이대로 마무리하기 아쉬운 우리는 제이와 내가 머무는 숙소 앞에서 깔루아(커피 리큐)를 샀어.

그리고 깔루아와 타 먹을 우유 몇 통을 샀지.

제이와 나의 방 바로 앞에 있는 루프 탑에 자리를 잡았어.

식당에서 컵 4개를 빌려 와서 술자리를 폈어.


무거운 가방을 메는 날이면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설레었다.


깔루아와 우유를 섞어 깔루아 밀크를 만들었어.

잉? 술이랑 우유를 섞는다니 이상할 것 같았어.

처음 먹어보는 맛에 대한 경계심으로 눈을 한껏 게슴츠레하게 떴지.

호록.

호로록.

어라, 이거 뭐지.

왜 이렇게 맛있지.


여행자의 도시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우리는 여행에 대한 계획을 나눴어.

이곳에 편하게 머물며 툴룸도 다녀올 것과,

불샥(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스쿠버 다이빙을 할 것과,

차를 렌트해서 신들의 샘이라고 불리는 세노떼를 다닐 것 등등.

맛있는 깔루아 밀크는 덤이었지.


여행자의 도시에서 제이와 나는 완벽한 여행자의 모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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