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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라임 Feb 09. 2021

이 시국에 수습기자가 됐습니다

합격부터 입사까지

"축하드립니다. 최종 합격입니다. ○일 뒤에 바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한창 게임 중이었다. 그러다 합격 연락을 받았다. 인사 담당자는 출근날 제출할 서류 목록을 일러줬다. 담당자의 목소리보다 심장 소리가 더 커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으레 있는 일인 듯, 인사 담당자는 짜증도 내지 않고 안내를 이어갔다. 감사합니다, 반복하다가 통화를 종료했다. 게임 안에선 팀원들이 게임하다 말고 어디 갔냐며 화를 내고 있었다. 욕을 먹고 있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취업준비는 터널 같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다. 하릴없이 신문을 읽고, 상식을 정리하고, 글을 썼다. 어쩌다 채용 공고가 나면 지원했고, 떨어졌다. 자기소개서를 썼다 지웠다. 그렇게 쓴 자소서로 인턴을 했다. 그리고 재계약에 실패해 3개월 만에 다시 취업 전선으로 돌아왔다. 지난한 나날이 다시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취준이라는 터널을 통과했을 땐 기쁘기보다 이 짓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하던 게임을 마무리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이미 반주를 드신 상태였다. 합격 소식을 알리자 아빠는 웃었다. 몇 년 동안 들었던 웃음소리 중 가장 컸다. 그 사실이 기뻤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다루겠지만 진로를 두고 아빠와 나 사이에는 꽤 오랜 갈등이 있었다. 그 갈등이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빠가 저녁에도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축하하는 자리는 뒤로 미뤘다. 엄마는 오히려 담담하게 축하해줬다. 첫 신고식은 간단하게 지나갔다.


그렇게 기자가 됐다


  ○일 뒤 정장을 입고 회사에 갔다. 서류를 쓰고 또 썼다. 마지막은 대망의 근로계약서였다. 근로계약서는 꼼꼼하게 읽고 서명하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은 터였다. 경계태세를 갖추고 건네받은 근로계약서는 생각보다 간결했다. 연봉도 그랬다... 인사 담당자는 정기자가 되면 정상 궤도에 오를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여기까지 와서 합격을 무를 수 없어서 서명했다. 그리고 기자증과 노트북을 받았다. 기자증에는 ‘○○○ 기자’라고 적혀 있었다. 


  수습기자의 하루는 인사와 교육으로 이뤄졌다. 처음 이틀 동안은 높으신 분들을 뵈러 다녔다. 새로운 인물을 만날 때마다 자기소개를 했다. 동기의 자기소개를 외울 정도였다. 하이라이트는 데스크가 모인 자리였다. 간단히 얼굴만 비추러 간다고 들었다. 회의가 바빠서 인사를 드릴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 내심 뒤로 밀리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모든 선배 기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따르듯 회의실로 들어갔다.


“어 그래... 자기소개 좀 해보지. 짧게”     


  회의실은 갓 나온 신문 1판*을 살피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차렷-경례-간단한 인사말’ 순서로 끝날 줄 알았던 첫인사는 편집국장의 한 마디에 갑자기 분위기 면접이 됐다. 날벼락을 맞은 1번 타자 동기는 손까지 떨어가며 자기소개를 마쳤다. 그의 긴장에 전염되는 기분이었다. 말이 길어지면 긴장이 들킬 것 같아 짧은 몇 문장으로 애써 가렸다. 몇몇은 귀엽다는 듯이, 몇몇은 귀찮다는 듯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교육은 아쉬움이 많았다. 원래는 국회나 기업도 찾아간다는데. 코로나 19로 모든 게 취소됐다. 회사 안에 있는 회의실에서 부서별로 돌아가며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끝나면 각 부서 스타일의 기사를 쓰고, 첨삭을 받았다. 오전에 문화부 수업을 들으면 오후에 인터뷰/신간 기사를 쓰는 식이었다. 점심은 매번 데스크와 먹었다. 역시 코로나 19로 테이블을 나눠야 했다. A 부장이 동기 ㄱ, ㄴ와 먹으면 다른 테이블에선 B차장이 동기 ㄷ, ㄹ와 먹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저녁이나 회식은 없었다. 교육에 들어온 선배들은 원래 일주일 내내 술자리가 이어졌다고 했다. 나와 동기들은 술자리는커녕 우리끼리도 술을 마시지 못했다. 기자는 결국 ‘인맥’ 싸움인데, 어렵게 시작하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칼퇴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0^ 코로나 19가 만든 븨극(?)인 셈이다. 수습기간은 아직도 몇 달 더 남았다. 물론 ‘마와리’도 있다.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까?      



*1판: 그날 가장 먼저 나온 신문. 제주도 등 멀리 배송해야 하는 지역이나 가판대로 가는 신문. 수도권 가정집에서 받는 신문은 1판 이후 몇 차례 판을 고친 뒤 배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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