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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Feb 12. 2024

‘거품 가득 찬’ 집

나만의 공간은 어디일까?


 미국에서 입국하자마자 시댁에서 지내게 되면서 당장 필요한 용품만 꺼내놓고 장식품 같은 잡동사니들은 모두 상자 그대로 친정에 갖다 두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지낼 방이 생각보다 좁아서 침대를 놓지 않기로 했다. 먼저 옷부터 쭉 정리하고 딸을 위한 놀이 기구와 장난감을 정리했다. 딸이 태어난 지 1년도 되기 전이라 아이 용품이 넘쳐났다. 우리 집이라면 거실을 마음껏 사용해도 되지만 시부모님과 함께 쓰는 공간이라 최대한 방안에 아이 용품을 두려고 했다. 하지만 방 하나에 가족 3명의 짐을 다 놓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머님이 먼저 눈치채시고 거실에 손녀가 놀 수 있도록 놀이매트를 깔아 주시고 덩치가 큰 놀이 기구들을 거실에 옮겨주셨다. 이렇게 많은 부분을 배려해 주셨지만 우리 가족끼리 살다가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모유 수유 중이라 행동이 자유롭지 않았고 시부모님이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집 안에서도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다녀야 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직장이 친정과 가까워서 딸과 함께 거기서 지내기로 했다.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엄마는 손녀가 온다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사주셨고 발이 넓은 엄마 덕분에 지인분들에게 인형과 책들을 선물로 많이 받았다. 주중에는 친정에서, 주말에는 시댁에서 보내면서 아이의 짐은 두 배로 늘었다. 일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집에 돌아오면 아이와 놀아주고 자는 게 태반이었다. 아이의 짐이 얼마나 늘었는지 집에 뭐가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1년 넘게 이렇게 시댁과 친정을 왔다 갔다 하며 살다가 드디어 우리만의 공간을 가지게 됐다. 이때서야 아이의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이 됐다. 친정에 있는 건 가지고 올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 시댁에 있는 아이 용품만으로도 집안은 가득 찼다. 우리만의 공간이 생기긴 했지만 전에 살았던 집보다는 많이 작아서 짐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 하는데 워낙 버리지를 못하니 다시 친정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친정엔 이미 이민 가방 2개와 장식품이 가득 찬 상자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젠 아이 용품까지 갖다 두니 베란다에는 우리 식구 짐으로 가득 찼다. 언젠가 큰집으로 이사 가면 꼭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사용한 물건들은 우리 가족에게 소중해서 간직하고 싶었다.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각인하는 순간 그들에게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난 단지 아이가 우선순위인 만큼 아이의 물건도 중요했다. 매년 아이가 자랄 때마다 아이의 손길이 스쳐간 물건을 몇 가지씩이라도 가지고 있고 싶었다. 막상 아이가 어렸을 때는 가능했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불어난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더 큰 공간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이때쯤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이사업체에서 이렇게 작은 집에서 짐이 끊임없이 나와서 신기해했을 정도였다. 이때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어 갔다.   

  

 온 집안이 아이의 책과 용품으로 둘러싸였을 때가 돼서야 이젠 뭔가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바로 구입하다 보니 어디를 둘러봐도 내 공간은 없었다. 특히 워낙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이의 책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어렸을 때 난 독서를 좋아하지 않아서 아이에게만큼은 책 읽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무조건 아이의 눈에 책이 보이게끔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온 집안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책으로 가득 찼다. 이건 우리 가족을 위한 집이 아니라 딸을 위한 공간일 뿐이었다. 우리 부부의 공간은 컴퓨터가 있는 책상뿐이었다. 일이 없을 때는 쉴 수 있는 편안한 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 집이 답답해서 바로 밖으로 나왔다. 나만의 공간이 없다 보니 조용한 곳에 가서 커피 마시며 책을 읽는 게 집에서 쉬는 것보다 마음이 편했다. 집에 있으면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금이라도 지저분하면 집을 정리하기 바빴다.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워낙 물건들이 많으니 한번 정리하고 청소하기 시작하면 몇 시간은 금방 가서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집을 벗어나는 게 나만의 시간을 사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에게 집은 단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주소를 제공하는 곳일 뿐이었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나에게 점점 퇴색되어 갔다. 나에게 진정한 휴식공간은 심플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조용한 피아노 연주가 나오는 카페였다.   

  

 하지만 더 이상 카페로 탈출할 수가 없었다. 2020년 2월 코로나바이러스로 외출이 통제되면서 한동안 카페에 갈 수 없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이제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집을 내가 원하는 카페같이 편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비워야 했다. 아이가 보지 않는 책과 작아서 입지 못하는 옷들 그리고 어렸을 때 사용한 장난감들을 더 이상 집안에 둘 수 없었다. 코로나19는 분명 삶을 숨 막히게 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나를 필사적으로 움직이게도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숨통을 틔어주었다.    

 

‘이제 네가 갈 곳은 집 밖에 없으니까 이제 제발 좀 버려. 네가 가장 행복하게 있어야 할 공간은 카페가 아니고 집이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물건에 집착하지 않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로 만족하며 즐겁게 삶을 추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방법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때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책들을 접할 기회뿐만 아니라 유튜브로 양질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그 순간뿐이었다. 솔직히 혼자서 해낼 자신이 없었다. 이때 나를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간절함으로 다양한 정보를 찾다가 내 인생을 변화시켜 준 슬로우 미니멀라이프 카페를 만나게 됐다. 하루에 한 개씩 비우며 인증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모임이었다. 혼자 하면 흐지부지 해질 수 있지만 이렇게 함께라면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딱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카페였다. 2020년 3월 26일 가입 후 하루에 한 개씩 비우는 삶이 시작됐다. 이날부터 비우는 진정한 즐거움을 알게 됐다.   

  

 물건에 집착하는 원인 중 한 가지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크다. 후회가 큰 만큼 과거의 무게는 무겁다. 놓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 무거운 무게를 계속 지고 가다 보면 우린 현재를 즐길 수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수록 더 높이 날고 높이 날수록 더 많이 본다. 가는 실에라도 묶인 새는 날지 못한다.’     


‘Here and Now’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물건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물건을 지키려고 신경 쓰는 시간에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 그럼 현재의 순간을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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