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니엘이와 4월 미국 엘에이에 여행 갔다. 니엘인 미국에서 태어난 후 처음 미국땅을 밟았다. 나름 3주가 길다가 생각했지만 시간은 여지없이 빨리 지나갔다. 여기서 엘에이를 더 즐기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공항에 가기 위해 한국택시를 이용했다. 한국인 기사님이 집 앞에 픽업을 오셨다. 기사님이 엘에이는 처음 왔는지 여행은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딸과 처음 하는 미국여행이라서 의미가 있고 이쁜 카페도 가보고 싶고 볼거리도 많아서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사님이 여기에 정착하게 된 얘기를 듣게 됐다. 강남권에서 큰 레스토랑을 하시다가 자녀분들 교육을 위해 이곳에 오게 되셨다고 했다. 자녀를 모두 사립학교에 보내야 하고 생활비가 워낙 많이 나가서 벌어둔 돈을 금방 다 쓰게 됐다고 하셨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했고 지금은 택시기사를 하면서 여기서 지내신다고 하셨다. 자녀 두 명 뒷바라지하다 보니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다. 이렇게 희생하며 모든 걸 다 해줬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은 없다고 하셨다. 그나마 건강해서 이렇게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자녀분들은 이렇게 열심히 산 기사님 덕분에 미국 유학 와서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한다. 이제는 기사님이 용돈 받아서 하고 싶은 거 하시면서 사셨으면 좋겠다고 하니 자녀들을 본적이 언젠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며 그들이 먼저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셨다. 그러다 어쩌다 기사님이 전화를 하면 별말 없이 그냥 대화는 끝난다고 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대화 할 시간이 없어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고 하시면서도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묻어났다. 미국에 오자마자 밤낮없이 일만 하셨기 때문에 자녀들과 말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하셨다. 교육과 육아는 엄마가 도맡아 했기 때문에 엄마와만 여전히 소통하며 지낸다고 했다. 미국은 워낙 가족중심적이라 가족 모임이 많은 편인데 여기에 살아도 다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자녀들과 이미 떨어져 지낸 지도 오래됐고 공통 관심사가 없어서 만나도 어색할 거라고 하셨다.
이렇게 살다 죽겠죠!
아무런 기대와 희망이 없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살다 죽는 게 뭘까. 그냥 하루 벌어 하루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인생인가. 그럼 너무 억울한데. 기사님 60대이시면 충분히 젊으시니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거 하시면서 사셨으면 좋겠다고 하니 여기서 살려면 일이 우선이라고 하셨다. 기사님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족에게 많이 희생했으니 이제 자녀들이 기사님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주면 안 될까. 아버지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면서 지금이라도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큰 욕심일까. 이건 우리를 사랑으로 키워준 부모님에게 당연히 자식이 해야 할 도리 아닌가...
공항까지 오는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사님과 대화하면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행복하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주저 없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태어났으니 그냥 어쩔 수 없이 사는 인생인 걸까. 결혼하면서 아이를 키우게 되면 아이가 무조건 최우선이 된다. 내 머리엔 온통 아이생각뿐이다. 아이 생각이 90프로 이상이고 내 생각은 10프로도 안된다. 하지만 내 생각을 그 정도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월세가 필요하다. 월세낼 돈이 없으면 그 공간을 비울 수밖에 없다.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돈이 아깝게 느껴지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오직 아이를 위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게 진정 행복한 인생일까.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울 엄마도 하고 싶은 거 다 미루고 우리만 보면 사셨으니까. 난 그런 엄마를 보고 컸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질 뿐이다. 나보다는 자식우선인 삶이.
하지만 난 계속 월세를 내더라도 나를 위한 이 작은 공간만은 지켜내고 싶다. 그래야 아이가 성장해서 내 공간이 커질 수 있을 때 그 작은 공간이 작은 불씨가 되어 나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줄거라 믿는다. 그때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로 100프로를 채우며 나다운 삶, 내가 원하는 삶을 즐기고 싶다.
살아내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야 자신을 다시 뒤돌아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점검하게 된다. 죽더라도 그냥 이렇게 살다 죽고 싶지는 않다. 바로 내일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난 정말 잘살았다고 아직은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이 없다. 삶의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걸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된다. 대단한 걸 할 필요는 없다. 아주 작은 거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걸 한 시간 정도 시간 내서 하면 된다. 지금은 한동안 못한 독서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매일매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게 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나다운 나를 찾고 싶다. 이렇게 살다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