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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Aug 20. 2024

미국에서의 또 다른 시작

딸과 함께한 LA 여행

드디어 딸 니엘이와 함께 미국에 도착했다. 니엘이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1살 때 한국으로 와서 미국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미 만료된 미국 여권을 재발급받기 위해 태국에서 오자마자 미국 대사관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새 여권을 발급받았다. 드디어 새 여권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미국 여권 덕분에 입국 심사도 매우 간단했다. 입국 심사관이 아이가 미국 플로리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얼마나 살았는지 등을 물었는데, 마치 친구와 스몰토크를 나누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였다.


치앙마이에서 한국으로 와서 일주일 정도 머무르던 중, 계단에서 넘어져 발을 접질리는 바람에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왼쪽 발이 퉁퉁 부어서 반 깁스를 해야만 했다. 미국에 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이번에 가지 않으면 니엘이가 너무 서운해할 것 같아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으며 어렵게 오게 되었다. 이렇게 온 만큼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작년 3월과 6월에는 통역 출장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 아쉬웠지만, 이번에는 니엘이와 함께 3주 정도 LA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더 그로브 몰’ 근처에 있는 콘도에 머물렀다. 그로브 몰에는 볼거리도 많고, 바로 옆에 공원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았다. 니엘이는 이미 가보고 싶은 곳들을 생각해 두었다. 디즈니랜드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더 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티켓을 구매했다. 감사하게도 LA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 덕분에 근처 예쁜 카페에 많이 가볼 수 있었고, 다른 친구 부부는 어바인, 오렌지 카운티,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을 구경시켜 주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여기서도 계속 수업을 했다. 시차가 많이 나서 새벽에 일어나 수업을 하고, KLM 자기소개서 첨삭이 많아 시간을 잘 조절해야 했다. 딸과 아침에 여행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5시간도 못 자는 날이 많았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LA의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맛있는 모닝커피 덕분인지, 나도 모르겠다. 눈에 알레르기가 생겨 부어오르고 발목이 아팠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번 딸과의 LA 여행이 마치 기적처럼 다가와서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우린 게티 박물관, LA 카운티 미술관, 베벌리 힐스 하이스쿨 음악회, 유니버설 스튜디오, 조슈아 트리에서의 별 보기 등 많은 것을 경험하며 LA를 느꼈다. 여긴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해 한인타운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거기에 가니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영어를 못해도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LA였다. 페리카나 치킨, 파리바게뜨, 중고서점까지 한국의 복사판이었다. 케이푸드의 영향인지 한식당이 많았고, 웨이팅도 길었다. 가격은 한국의 3배 정도였고, 팁까지 내야 했다. 비쌌지만, 한국의 맛이었다.


플로리다에 거주할 때는 왜 미국이 좋아 보이지 않았을까?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특별한 것도, 소중한 것도 없었던 것 같다. 떠나고 나니 그립고 아쉬운 것을 보니,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시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미국에서 거주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 남편이 있어서 나는 그곳에서 살아야만 했고, 남편의 공부 과정 덕분에 배우자 비자는 너무 쉽게 나왔다. 언제든지 미국에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LA를 다녀온 후, 니엘이는 기회가 된다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니엘이는 시민권자이지만, 미국 유학을 알아보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일단 내가 니엘이와 함께 가기 위해서는 관광 비자가 아닌 학생 비자나 워킹 비자가 필요했다. 석사 입학 허가를 받으면 공부할 수 있지만, 학비와 체류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고, 워킹 비자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아이 혼자 보낼 수 있는 교환학생이나 시민권 유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찾아봤지만, 중학생 때까지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분명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니엘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펼칠 수 있도록,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잘 채워나갔으면 한다. 딸아이는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미국을 와보고 나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가 보다. 이번 겨울에는 니엘이와 함께 영국에 갈 계획이다. 니엘이는 7살 때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편지를 써서 버킹엄 궁전에 보낸 적이 있다. 그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니엘이. 여왕이 별세했을 때, 우리나라 여왕처럼 슬퍼했던 니엘이와 함께 이제는 영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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