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 살면서 나름 바쁘고 열심히 지내고 있다. 딸의 학교생활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그 외에는 요가와 공부, 수업을 하며 지내다 보니 한두 달 정도 지나니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되었다. 딸이 청소년기라서 청소년 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졌다. 아이의 문화를 이해해야 더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아이와 이렇게 해외에 나와 있으니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 타인에게 묻거나 책이나 유튜브강의로 정보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어, 직접 공부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출석 수업이 비대면으로도 진행되지만 시험은 반드시 현장에서 치러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워 고민이 됐다. 그런데 방송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2024학년도부터 해외 거주자도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 일반 학생과 다른 점은 복수 전공이 안 되고 장학금도 없다는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바로 등록했다.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2월 말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태국에서 수업을 듣다가 한국에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 총 3개국에서 수업을 들은 셈이다. 한 치 앞의 일은 알 수 없다. 태국에 돌아오자마자 힘든 일이 연달아 발생해 학교 미팅에 집중하느라 면접 코칭도, 리포트도 모두 손을 놓게 되었다. 왜 이걸 시작했을까 끝없이 나를 탓했다. 아이의 일이 우선이기에 이 일을 먼저 잘 처리해야 했다. 예상보다 일이 길어졌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수면 보조제를 먹으며 잠을 자고, 안 먹던 과자를 끊임없이 먹었다. 피부가 뒤집히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5월부터 6월은 거의 좀비처럼 지냈다. 세상이 미워지고, 종교적 신념이 흔들리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공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딸을 살려야 했다. 죽기 살기로 이 일에 매달렸다. 학교가 내가 원하는 만큼의 처벌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하늘이 심판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미 리포트 기한이 지난 상태였다. 출석 수업 외의 과목은 늦게 제출해서 중간고사 때 1점, 기말고사 때 2점이 감점되었다. 한 과목은 리포트를 다 작성해 놓고, 아직 2시간이 남아서 커피 마시며 한 번 더 읽고 제출하려 했는데 2분 차이로 제출 버튼이 눌리지 않았다. 한국 시간 오후 6시를 태국 시간으로 착각한 거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 때문에 작성해 놓고 제출하지 못해 허탈했다. 나에게 화가 났다. 2학기 때는 휴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리포트 6개를 두 번이나 작성하는 건 고통이었다. 제정신이라도 힘들었을 텐데,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하려니 진이 다 빠졌다. 시작은 했으니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었다.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우며, 어떻게든 해냈다. 과제를 늦게 제출해서 감점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일단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하게 된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는 더 강해졌다. 두 달간의 소중한 시간들이 아깝지 않게 그 시간들을 멋지게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또한 이번 사건은 청소년교육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에서 시작되기때문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적으로 알려줬다. 부모는 청소년인 자녀를 어떻게 대하며 소통해야 하는지를 배워야만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이유다. 일이 최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일보다 가정이 항상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부모가 태반이다.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고 한번 엇나간 아이는 되돌리는데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부모는 끊임없이 배워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