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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 너머로 보이는 평온

by 하니작가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곤 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면 불안이 몰려와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이 많아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비 오는 날 탁자 위에 올려둔 가방이 떨어지면서 산 지 4개월밖에 안 된 태블릿 액정이 깨졌다. 이전의 나였다면 당황과 분노, 자책이 뒤섞여 감정이 크게 요동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놀랍게도 차분했다.


깨진 액정을 보며 “그래도 비 오는 날 가방 안에 있어서 침수되지 않은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저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온전히 깨달았던 것이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냐”고 묻고, 오히려 나보다 더 걱정해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웃으며 답했고, 금요일 저녁이었던 그때, 친구들이 도와 삼성 서비스센터에 주말 예약까지 했다.


수리비는 197,000원.
예전 같았으면 아깝다고 속상했을 금액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 돈으로 내 평온을 확인했다면, 오히려 값진 대가였다.

이 일을 친구 릭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는 내 태도를 ‘세리니티 프레이어(Serenity Prayer)’와 닮았다고 했다.

"God, give me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which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며 나는 마음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다.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이 있고, 바꿀 수 있는 일이 있으며, 그 둘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경험은, 내가 조금씩 그 지혜를 배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이나, 불치의 병, 사람의 마음처럼 돈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에 비하면 깨진 액정쯤은, 훨씬 가벼운 일이니까.


나는 이제 안다.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더 이상 사람 때문에, 작은 사건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을 사랑하며, 나와 함께 평온하게 살아가고 싶다.

여전히 나는 매일 나를 알아가고 있다.
어제보다 조금은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깨져도 괜찮다. 흔들려도 괜찮다. 결국 다시 나를 세워가는 건, 나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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