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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an 30. 2020

수영장 텃세를 조심하라고?

수영 일기

"나도 수영하고 싶어서 알아봤는데, 거기 텃세 심하다던데?"

수영 강습 신청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친구에겐 이런 말이 돌아왔다. 물이 무섭고,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현실이 더 두려웠던 나는 친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하지만 수영장 텃세를 조심하라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자유 수영을 갔는데 '여기는 원래 내가 수영하는 레인'이라고 다른 레인으로 쫓겨나는 경험을 하거나, 실제로 누가 불만을 접수한 것도 아닌데 "타투가 많아서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여기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거나, 샤워실에 길게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다 씻을 때쯤 자기 자리로 아는 사람을 부르는 사람을 보거나.


그런데 지난 삼 개월 동안 나에겐 이런 일은 없었다. 내 타투를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이거 의미가 있는 거예요?"라고 물어보거나, 샤워실 줄 서서 멍 때리고 있는 나에게 "여기 비었어요."하고 알려주거나, 수업 들어가야 하니 먼저 씻으라고 양보해주는 일은 있었지만(샤워실에서 수영복 입고 기다림=수업 끝남, 마른 몸으로 기다림=수업 전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아, 새로 온 회원에게 오래 다닌 회원의 위엄을 떨치는 걸 목격하긴 했다. 강습 첫날, 잔뜩 긴장한 채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유아풀에 앉아 기다리는데 갑자기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 와서 샤워 안 하셨어요?" 마른 머리로 수모를 손에 들고 걸어 들어오던 남자를 향한 거였다. "오기 전에 집에서 씻고 왔어요."라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그래도 여기 와서 무조건 씻어야 돼요."라는 말과 함께 샤워실로 끌려갔다.


첫 수업이 시작되고 출석을 부른 선생님 역시 "혹시 여기 와서 샤워 안 하신 분은 지금 가서 하고 오세요!"라며 들어오기 전 무조건 씻어야 한다는 걸 알려줬다. 그러니까 앞의 사건을 오래 다닌 사람의 텃세라고 부를 순 없을 것 같다. 처음엔 꼭 저렇게 큰 목소리로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자리에 있던 새로 온 모두에게 수영장 이용 매너 중 하나를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수영장 텃세를 경험한 친구들과 나의 차이는 사실 그저 작은 '운'일지도 모르겠다. 어딜 가든 암묵적인 규칙을 무시하거나, 무례한 사람은 있으니까. 또 어딜 가든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규칙을 지키고, 친절한 사람은 있으니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작은 '운'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주위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딱 한 명이라도 더 많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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