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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Feb 08. 2024

취직한 이야기

엔지니어가 되지 못해 다행이지

공과 대학을 다니는 내내 적성에 맞지 않아서 빌빌댔다. 한 학기에 세 번이나 있는 시험, 계속되는 퀴즈와 과제의 연속빌빌대다 재수강을 하고 그것도 안 돼서 계절 학기를 듣는 식으로 버텼다.


지금은 그러지 않겠지만 당시 어떤 과목은 시험이 끝나면 학번과 이름까지 적어서 성적을 게시했다. 친구랑 가볍게 성적 확인하러 갔다가 처참한 나의 점수가 공개되는 상황을 마주할 때의 심정이란.


지금도 당시에 느꼈던 수치심이 기억나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왜 이렇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지 모르겠다. 어떤 일은 못 할 수도 있잖아?


한 번은 지도 교수를 찾아가서 열심히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계속 다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상담을 했다. 아마도 지금 나 정도의 나이였을 교수님은 이렇게 말다.


"십 년 뒤에 동역학 점수가 어땠는지 기억날 것 같아?"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연하지.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삼십 대를 상상하기는커녕 해답을 주지 못하는 동역학, 열역학, 유체역학의 점수를 잘 받는 방법이나 알고 싶었으니.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졸업했다. 나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한 편이지만, 그렇게 힘들었으면서도 대학을 졸업한 것, 그렇게 힘들면서도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칭찬한다. 아마도 인내의 동력은 내게 비빌 언덕이 대학 졸업장 밖에 없다는 사실과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이었겠지만.


4학년 2학기가 되면서 똑똑한 공대생 틈에서 또 기죽고 살긴 싫어서 절대로 엔지니어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원서를 쓰면서 내 학점이나 토익 점수로 인문대 졸업생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영어 점수는 공대생 치고 괜찮았지만 학점은 대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마지 노선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공대생들이 지원할 법한 온갖 회사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입사 원서를 쓰면서 참 웃기게도 합격하고 싶었다. 그렇게 싫었으면서. 나를 주눅 들게 하던 사람들이 모인 집단으로 들어가는 걸 온몸으로 염원했다.


그날도 꾸역꾸역 자소서를 썼던 것 같다. 그러다 학교 취업 게시판에서 모 로펌의 특허 스탭 모집 요강을 보게 됐다. 로펌에서 공대생을 왜 채용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지원했다. 그리고 법대 친구에게 그 로펌에 대해 물었는데 업계 몇위 로펌이라는 것만 알려줄 뿐 특허 업무에 대해서는 그 친구도 몰랐다.


제조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는 와중에 로펌에서 서류 통과했으니 필기시험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 마음으론 변리사 시험을 공부하는 선배에게 물어봤다면 간단한 조언이라도 들었을 텐데 다. 그때는 이게 내 업이 될 줄 모르고 아무 준비 없이 필기시험을 보고 면접까지 봤다. 어리버리하게 시험을 보면서도 광화문에 있는 이런 빌딩에서 일하는 건 좋겠구나 정도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취업을 준비하는 나는 요령이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취직을 잘 하는 것도 방법이 있는 건데 그걸 몰랐다. 면접 TPO도 모르고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가기도 했으니. 그런 주제에 스스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방식대로 요령과 스킬 없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내 열심을 바쳤다.


서툰 고군분투는 제조 회사에 모두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책을 좋아하니까? 하면서 순진한 마음으로 지원했던 출판사도 떨어졌다. 그리고 기타 등등의 회사로부터 불합격 메일을 받을 즈음 로펌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오호라!


입사해서 시작한 내 업무는 외국 기업이 한국 특허청에서 특허를 받을 수 있도록 기술 명세서를 검토하고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 직무에는 적당한 공학 지식과 글쓰기 감각이 필요했는데 내게 그 능력이 있었는지 나는 잘 적응했다.


그렇게 이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첫 직장을 다니고 있다.


가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싱크가 맞지 않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머릿속엔 그 시절 입사 원서를 써서 날리던 내가 있는데, 현실에는 능숙하게 펜대를 굴리는 직장인이 있다. 어떻게 이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직장을 다닐 수 있었지. 요령도 스킬도 없던 내가 어떻게 의연한 척 어른의 세계에 적응했지.


그래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바친 어설픈 열심들이 그저 흘러만 가진 않았나 보다.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으니. 갑자기 동역학 점수가 기억나지 않아서 웃음이 난다. 교수님의 혜안에 감탄해야 하나. 이렇게 피식 웃으며 그때를 추억하는 걸 보니 적어도 오늘의 나는 안전하게 현실에 안착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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