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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May 16. 2024

망한 파스타와 영화 로봇 드림


부처님 오신 날 아침, 평일처럼 일찍 눈을 뜬 나는 토마토 파스타를 준비했다.


내 요리 스승인 유튜브의 레시피에 따르면, 선 드라이드(sun dried) 토마토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방울 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소금과 바질과 오레가노 가루를 뿌린 후 오븐에 2시간 구워야 했다. 굽는 동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산책로를 걸었다. 하늘이 꾸물꾸물했다. 지난 주말에 새우와 갑오징어와 청경채를 듬뿍 넣고 오일 파스타를 했는데 은총이가 세 접시나 먹어 치웠다. 나는 그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오븐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시키고 구운 토마토를 올리브 오일에 재워 하나의 재료를 완성했다. 그 후는 간단했다. 선 드라이드 토마토 25개, 대추야자 3개, 마늘 2조각, 소금, 발사믹 1스푼, 바질 5장, 토마토를 넣고 갈아서 소스를 완성하면 끝이었다.


가족들은 주방에 풍기는 냄새가 괜찮았는지 서둘러 식탁을 세팅했다. 남편은 한입을 먹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건강한 맛이라며 먹었다. 은총이는 지난주에 먹은 오일 파스타가 더 맛있다고 바로 말했다. 서둘러 맛을 보니 슴슴했다. 허브 향이 과해서 토마토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덜 익은 토마토를 쓴 것이 패착인가. 은총이는 힘겹게 한 접시를 먹었다. 면이 많이 남아서 나 혼자 저녁까지 먹어야 했다. 맛은 없는데 만들고 먹고 치우는데 4시간이 걸린 휴일 점심이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가족들과 '로봇 드림'이라는 영화를 봤다. 어디선가 예고를 봤는데, 예고만으로 눈물이 나길래 선택했다. 파블로 베르헤르라는 스페인 감독이 만든 이 애니메이션은 강아지와 로봇이 주인공으로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다. 그럼에도 눈물 나는 장면이 많았는데 너무 내 인생 같아서였다. 정확히는 강아지와 헤어지고 나서 로봇의 다리가 잘리는 장면부터였다.


로봇은 다리 한쪽이 잘린다. 배에 난 구멍을 막는데 로봇의 발가락을 사용하려는 어떤 사람의 냉담한 행동 때문이었다. 고물상에 팔려가 죽을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너구리의 도움으로 라디오 몸통과 새 다리를 갖게 된다. 영화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서도 노래와 웃음을 빼먹지 않는다. 약간 망가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외로움, 고통, 노래와 웃음을 반죽해서 만들 놓은 게 삶이라는 듯이 말이다.



방탄소년단의 RM이 'come back to me'라는 신곡을 냈다.


You are my pain, divine, divine
You are my pain, divine, divine


나는 이 가사에서 You를 삶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들을 때부터 그렇게 다가왔다. 이건 요즘 내가 삶은 고통이라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내게 큰 고통을 주는 직장 생활은 어떤 날은 보람의 대상, 어떤 날은 경제적 만족의 대상이었다. 누가 보면 나는 아래 사진의 로봇처럼 꽃길을 걷는 직장인인데, 내가 보면 나는 아빌리파이와 자나팜의 도움으로 삐걱대며 움직이는 고물 로봇이다.


내일은 또 어떻게 생각이 변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고통이지만 이 고통이 내 삶을 지켜준다. 그래서 오늘도 이겨내고 출근한 이 순간을 신성하게 여기고 싶다. 삐걱삐걱. 내일의 파스타는 부디 맛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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