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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May 29. 2024

떠나는 친구에게

그냥 조금만 더 행복해 보자

입사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두 명의 친구가 있는데 그중 한 명 남편이 주재원으로 나가게 되면서 퇴사하게 됐다. 우리 셋은 점심을 같이 하며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일상적인 얘기를 나눴다. 회사가 얼마나 싫은지, 그 싫은 마음이 신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깔깔대며 나눴다.


실제로 퇴사하는 친구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탈모가 왔다. 친구가 머리카락이 빠진 부위를 보여줬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넓은 범위여서 눈물이 났다. 나는 회사에 있으면 마음에 멍이 드는 기분인데, 이런 말을 해도 남편이 '내가 먹여 살릴게 때려치워'라는 말을 안 한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비싼 동네에 비싼 집을 가지고 있는 다른 친구는 맨날 돈이 없고 그래서 회사를 못 관둔다고 투덜거렸다.


차려입고 깔깔거리며 파스타를 씹고 있는 세 명의 여자가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궁금하다. 너는 티파니 반지, 나는 까르띠에 시계, 걔는 불가리 목걸이. 아마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을까?


사무실로 돌아와 우리 셋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은 마음의 병이 있고, 누구는 어떤 이유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누구는 가족이 아프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최근에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본 구절이 떠올라 떠나는 친구에게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20대에 만났잖아. 너 스물셋?넷? 그쯤에 만났잖아.

그때는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될지 몰랐는데, 나는 가슴에 멍이 드는 기분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고, 너는 탈모가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어른이 되었네.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나는 이걸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우리가 좋다.


최근에 달리기에 관심이 생겨서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에세이를 읽었어. 어떤 마라토너가 달리기를 할 때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이런 구절을 외운대.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우리는 선택 사항으로서의 고통은 나름 적절히 처리하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찾아온 마음의 멍과 탈모는 살아있다는 증거 같아. 나는 책 속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저런 구절을 만트라처럼 가슴에 새기며 버티고 있어.


오랜 시간 회사에서 친구가 돼줘서 고마웠어. 편지를 쓰다 보니 스카이프로 못 만난다는 게 이제야 실감 나서 갑자기 많이 서운하네.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형태가 되어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왠지 이 바람은 이뤄질 것 같아. 너의 가족의 안녕과 건강과 화목을 빌어.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릴 땐 나만 가난한 것 같고 나만 아픈 것 같았는데 사십 대가 되고 보니 다들 힘든 걸 알겠다. 오늘도 삶이 고통인 줄 알면서, 직장이 그지 같다고 말하면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커피 한잔을 사들고 출근했다. 이렇게 매일 분량의 선택 사항으로서의 고통을 처리하며 산다.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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