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파리 올림픽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나는 도쿄 올림픽 양궁을 보며 울고 있다. 안산 선수 진짜 지렸었지. 대단했지! 안산 선수가 10점을 쏘는데 3년이 지난 오늘 출근길 버스 안에서 눈물을 끌썽이는 나 자신 뭘까.
안산 선수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 여자 개인전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양궁 역대 첫 3관왕,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사상 첫 3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안산 선수가 이런 빛나는 업적을 달성할 줄 몰랐던 2021년의 나는 경기를 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준결승부터는 어찌나 떨리던지 소파에 앉아서 볼 수가 없었다.
내 심장을 이렇게 후려쳐 놓고 본인 심박수 태연한 이 언니 뭐지..미국 선수가 너무 잘해서 미치겠다.. 미치겠다.. 하면서 보게 만들어 놓고 묵묵히 슛오프에서 10점 꽂는 이 언니 뭐지..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뭔가 매혹적인 면이 있다. 하얗고 단정하고 고요할 뿐인데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시선을 끌어당겼다. 혼성 경기에서 김제덕 선수가 파이팅을 외치든 말든 10점에 꽂아 넣던 그녀는 완전 능력 있는 멋진 언니(멋언니) 그 자체였다.
또 한 명의 나의 멋언니 안세영 선수. 이 선수는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내 마음을 훔쳤다. 그녀는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책으로 배웠던 하이클리어, 헤어핀, 푸시, 드롭의 의미를 몸소 알려줬다. 오른쪽 무릎을 다친 채로 그녀가 날렸던 스매싱은 코트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꽂혔다. 우승을 확정 짓고 팔을 힘차게 흔들며 내뿜는 포효는 아름다웠다.
나는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그녀를 티비에서 많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쏟아지는 방송 출연 제의와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하고, 더 강한 모습으로 코트에서 만나자고 SNS에 썼다. 그리고 약속대로 더 강한 모습으로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허빙자오를 2-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렇게 4년마다 강력한 여자 선수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판을 보면서 오묘한 감정이 든다. 이 여자들이 내게 뭔가를 안겨주는 것 같은데 이 웅장한 감정의 정확한 이름을 못 찾겠다. 용기? 희망? 멀리 있는데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 연대감? 애틋함?
오늘도 인스타에 좋아요를 누르며 멋언니들의 안녕을 빌었다. 나의 멋언니들을 괴롭히는 악당이 없었으면 좋겠다. 좋은 뉴스에만 그녀들 이름이 오르내리면 좋겠다. 국가대표 말고 보통의 삶도 화창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각자 떨어져 살 뿐이지만 서로의 마음에 뭔가를 안겨줄 수 있으니까 이렇게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