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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Oct 12. 2023

<사랑하니까 괜찮아> 노란버스

남편이 파킨슨 진단을 받은 지 3년쯤 되었을까? 처음에는 일상생활에선 크게 표가 나지 않았기에 동네를 돌며 산책도 하고 종종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남편의 몸은 느려졌고 조금씩 떨림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동창모임에서 어느 친구가 귓속말로 ‘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날로부터 남편은 현관문 밖으로 한발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 질문을 받은 날 저녁 남편은 마음이 더 아파했다.     


가만히 서 있을 때 몸이 흔들려 위험해 보일 정도가 된 이후로는 남편을 혼자 두고 외출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아픈 남편에게 가급적이면 짜증을 내고 싶지 않았지만 일 년이 넘게 외출도 못하고 남편 곁에만 있자니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먼저 보낸 친구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아침부터 오후까지 보호해 주는 요양센터가 있다고 했다. 만약 남편이 주간보호센터에 나가만 준다면 하루에 단 몇 시간만이라도 내가 자유로울 텐데,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동창의 걱정 어린 한마디에 세상과 문을 닫아버린 그 자존심에 혹시 상처받을까봐. 서운할까봐. 그런데 예고 없이 남편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한 나를 보면서 겁이 났다. 이러다가 남편의 간병에 빨리 지쳐버리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노인주간보호센터라는 것이 있는데,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답답하니까 모여서 다양한 운동도 하고 놀이도 하는 곳이야. 아침 9시에 갔다가 5시경에 온다는데... 치매가 살짝 온 내 친구 남편 알지? 그 분도 거기 다니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해. 하루 종일 마누라 얼굴만 보고 있다가 사람들하고 같이 얘기도 하고 하니까 즐거워했대. 식사도 골고루 나오고... 당신도 거길 나가 보면 어떨까?”

“싫어. 당신 나 보살피는 거 힘들어? 외출하고 싶어? 그럼 그냥 나갔다 와. 혼자 있어도 되니까.”

남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식으로 딱 잘라 말했다. 그런데 나는 한번 말을 꺼낸 이후로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직도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남편은 몸과 마음이 늘 아팠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힘들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 시간을 버티려면 나도 나를 좀 돌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나는 다시 남편을 설득하기로 했다.     


“여보 매일 이렇게 집에만 있으면 당신 운동량도 부족하고 지루하잖아. 그리고 나도 좀 쉬고 싶어. 당신 가 있는 동안 좀 누워도 있고  볼일도 보면 좋을 것 같아. 그러다 우리 저녁에 만나서 하루 종일 있었던 일 재미나게 얘기도 하고 같이 저녁 먹고 하면 난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래? 당신이 쉬고 싶어? 그러면 나 운동 하고 심심하지 않게 지내려고 가는 게 아니라 당신 좀 편하라고 가는 거다. 나는 그러면 갈 수 있어. 내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라면 갈게.”

고마워야 할지 서운해야 할지 모를 감정이 들었다. 마치 나 편하자고 남편을 억지로 밖으로 내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그걸 꼭 집어 말하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아이들이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고 면담을 하고 가기로 결정을 하는 며칠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결정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참았다. 남편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옳은 결정을 한 것이니까.     


주간보호센터에 가기 위해 실내화, 여분의 옷 등 몇 가지 준비물을 챙기고 있었다. 아이들을 처음 학교에 보낼 때와 같은 감정이 들었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실내화 뒤꿈치에 커다랗게 남편의 이름을 쓰고 있는데 나를 불렀다.

“여보... 나... 그 노란버스는 타기 싫어.”

“응? 무슨 버스?”

“센터에서 아침에 나 데리러 온다는 버스... 그 노란버스 말이야.‘  

“아니 왜? 그거 타면 사회복지사가 안내해서 편하게 왔다 갔다 할 텐데. 우리 집 앞까지 바로 오는 거 당신도 봤잖아. 그럼 어떻게 가?”

“서예실 다니면서 아침마다 그 버스 봤어. 치매 걸린 할머니랑 중풍인지 뭔지 다리를 막 떠는 남자랑 타더라고. 센터에 가서는 잘 지내다 올게. 그런데 오고갈 때 나... 그 버스는 타기 싫어...”

이름 석 자의 마지막 자를 쓰다가 나는 온 몸이 굳어버렸다. 조용히 말하던 남편의 부탁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절규였다. 점점 부자연스러워지는 자신의 몸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인정하기 싫은 남편의 자존심이었다. 나 편하자고 그렇게 싫다고 하는 곳으로 떠밀어 보내려고 했던 것이 미안했다.  

   

“당신 정말 가기 싫으면 안가도 돼. 나중에 더 힘들어지면 그땐 어쩔 수 없지만 아직은 버틸만하니 우리 둘이 좀 더 해 볼까?”

“아니야, 생각해보니 당신이 너무 힘들어. 난 당신을 위해서 꼭 다닐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그동안 하고 싶은 거 많이 해. 그 대신... 노란버스만 안타게 해줘... 버스를 타면 내가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 들 것 같아...”

남편은 다음날부터 딸아이와 함께 했다. 출근길에 들러 아빠를 주간보호센터에 모셔다 드리고 회사로 출근하고 퇴근길에 다시 들러 집으로 모셔왔다. 아이는 어떤지 모르지만 남편은 만족했다. 오고가면서 딸이 조잘대는 수다를 듣는 것도 좋아했다. 죽어도 싫은 그 노란버스는 여전히 아침저녁마다 아파트 앞에서 두세명을 태우고 내렸지만 남편은 타지 않았다. 베란다를 내다보며 노란버스가 떠난 다음 도착하는 딸아이의 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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