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다리에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내 심장은 더 힘이 들어가 벌떡벌떡 방망이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가 두 손을 잡고 있으면 소파에서 혼자 일어날 수 있었던 남편이 오늘은 꼼짝을 못 한다.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는 거냐며 싫은 소리를 했다. 남편의 다리를 의자에서 멀리 떨어뜨린 후 발끝에 내 발끝을 얹어 힘줄 곳을 만들었다. 그리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남편의 두 손을 잡아끌었다. 남편과 내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졌을 때쯤 남편의 무거운 엉덩이가 소파에서 떨어졌고, 그다음 힘들게 무릎을 펴고 내게 와서 안겼다.
“당신 나한테 이렇게 안아달라고 응석 부린 거야?”
“다리에 힘이 안 들어 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 좀 잡아줘.”
기껏 일으켜줬더니 퉁명을 떤다고 한소리 하고 보니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 화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의 절망이었다.
“여보 일어난 김에 걷는 연습 좀 합시다. 의사가 하루에 30분 이상씩 운동하라고 했잖아.”
내 어깨를 감싸고 있던 두 팔을 천천히 풀어 맞잡았다. 그리고 나는 뒷걸음으로 남편은 앞으로 한발씩 떼며 마루에서 부엌으로 다시 마루로 서너 바퀴를 돌았다. 어린아이 걸음마 연습 같기도, 첫 사교댄스를 배우는 몸치들의 스텝 같기도 한 이것을 적어도 열 바퀴는 더 돌아야 남편의 운동이 될 것 같은데 내 팔목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20센티는 큰 남편이 내 두 손에 의지를 하고 있으니 목덜미가 당기고 허리가 뻣뻣해지는 건 당연하다.
“아이고아이고 여보, 잠시만 내가 허리가 너무 아프네. 잠깐 좀 쉬면서 스트레칭 할 동안 휠체어 잡고 잠시만 서 있어 봐요. 꼭 잡고 있어요.”
나는 목과 팔목을 살살 돌려가며 풀어주고 훌라후프를 하듯 허리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하던 국민체조 동작 중 노 젓기 동작을 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이렇게라도 기분을 끌어올려야 했다.
“오두방정 떨지 말고 여기... 여기 와서 앉아봐” 남편이 잡고 있던 휠체어를 향해 턱짓을 한다.
“내가 거길 왜 앉아? 당신도 참... ”
“앉아봐. 내가 밀어 줄게. 당신은 좀 쉬고 나는 운동하고...”
“와~ 당신 천재인가 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앉아있으면 무거우니까 당신 운동도 더 잘 되겠네.”
호들갑을 떨면서 휠체어에 앉았지만 뒤통수에 눈이 없는 나는 불안했다. 남편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휠체어가 천천히 움직인다. 혼자서는 앉았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부축하지 않으면 혼자서 걷지도 못하는 남편이 나를 밀어준다.
“어때? 편해? 난 오래는 못해. 그래도 두 바뀌는 태워줄게.”
“와~ 이게 무슨 기분이지? 당신이랑 살면서 이런 호강은 처음인 거 같은데... 요즘 애들은 남편이 막 업어도 주고 그러던데 하나도 안 부럽다 뭐... 우회전... 좌회전... 와, 당신 최고.”
“시끄러... 왜 이리 말이 많아... 그렇게 좋아? 아픈 남편이?”
마루에서 부엌을 지나갈 때마다 신발장 전면에 붙은 거울에 우리 모습이 보였다.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두 손과 무겁게 끌리는 두 발에 집중하고 있다.
‘좋다마다요.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요. 좋으니까 60여 년을 옆에 꼭 붙어 있었죠. 앞으로 10년은 더 같이 있고 싶으니까 빨리 운동하고 약 먹고 나아서 옛날처럼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닙시다.’ 목에서 막혀 입으로 뱉지 못한 말이 무릎 위로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