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향 Oct 14. 2023

<사랑하니까 괜찮아> 남편의 섬망(譫忘)

남편이 다급히 옷을 챙겨 입으면서 말했다.

“여보 밖에서 어린 애가 사탕을 사달라고 우는데 내가 빨리 나가봐야겠어.”

“아니 어떤 애가요? 밖에 아무도 없는데.”

겉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고 뛰어나간 남편은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 사탕봉지를 든 손을 가슴께에 꼭 붙이고 두리번거린다. 소중한 것을 잃은 아이처럼 주변을 살피면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자주색 가디건을 갖고 내려가 어깨에 걸쳐주며, 아이가 어디로 갔나보라고, 내일 다시 오면 갖다 주자고 달래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매운탕을 맛있게 끓여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남편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불안한 듯 집안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는다. 애기 엄마가 어딜 갔는지 애기가 울고 있다는 것이다. 사탕봉지를 들고 방마다 문을 열어보고 베란다 문도 열어보면서 아이를 찾는다.      


“사탕을 빨리 줘야하는데 화가 나서 집을 나갔나보네. 내가 나가봐야겠어.”

“여보, 사탕이 먹고 싶으면 또 올 테니까 우린 저녁을 마저 먹읍시다. 당신 좋아하는 우럭 매운탕이잖아요”

“애가 우는데 밥이 넘어가나. 빨리 달래줘야지.”     


결국 나는 파자마바람으로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을 잡고 겉옷을 입히고 따라 나섰다.

우리 둘은 경비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분명 어디쯤에서 울고 있는데 보이질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는 남편이 낙심해서 돌아설 때까지 곁을 지켜 주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남편에게 얼마 전부터 가끔 섬망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치매가 온 줄 알고 놀랐는데 파킨슨병 주치의는 약 부작용으로 환청과 환시가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자신의 두 다리로 걷을 수 있고 자신의 손으로 수저를 들어 밥을 먹을 수도 있고, 뉴스를 보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나에게 가르쳐주던 남편의 모습 그대로인데, 가끔씩 머릿속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남편에겐 울고 있는 아이가 나타난다. 그러면 남편은 사탕봉지를 들고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아이를 찾아 나선다. 그 일은 항상 한 밤중에 일어났다. 깜깜한 밤중에 아이가 길을 잃어 울고 있다고 몸을 덜덜 떨며 걱정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나는 온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아야 한다. 남편은 아이가 걱정돼서 울고 나는 남편이 걱정돼서 울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에게 나타나는 그 아이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남편과 내가 키워보지도 못하고 보냈던 우리 첫째. 어쩌면 단 한 번도 표현하지 않고 꿋꿋했던 남편에게도 우리 아가가 뼛속 핏속에 깊게 박혀있었던 것이 아닐까.    

 

매일 사탕을 사서 모으니 집에는 사탕봉지가 쌓여갔다. 어떤 날은 용돈을 줘야한다고 흰 봉투에 돈을 넣어 나가기도 하니 돈 봉투도 쌓여갔다. 나는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의사에게 우리 둘을 살려달라고 사정을 했다.     

“파킨슨 약을 조금 조정하고 섬망을 없애주는 약도 처방을 해 드릴께요. 그 대신 파킨슨의 진행이 조금 빨라질 수도 있어요.”

“여보, 당신도 밤마다 너무 힘들지? 우리 의사선생님이 주시는 약을 믿고 먹어봅시다.”   

  

처방된 약을 보니 좁쌀만 한 약이 한 알 추가되었다. 그 약을 먹은 저녁, 남편은 식탁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끝까지 먹을 수 있었다.      

남편이 돌아와 기뻤다. 아주 작은 알약 한 알이 1년 가까이 남편을 불러냈던 애기울음소리를 떠나가게 했다. 어쩌면 남편이 평생 보고 싶었던 아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보내야했다. 그리고 남편은 더 이상 사탕을 사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니까 괜찮아> 내가 그렇게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